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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심 칼럼]감동을 주는 야당

입력 | 1998-09-01 19:10:00


정치인이 시인이면 좋겠다. 시인의 자질을 지녔으면 좋겠다. 시적 상상력과 시적 직관, 시적 영감을 지녔으면 좋겠다. 청중은 정치인의 지루한 산문이 아니라 심금을 울리는 시적 표현에 감동한다. 정치가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은 정치인이 시구를 읊듯 야망을 말할 때다. 그 때 국민은 정치인의 야망에 고무된다.

가령 영국의 젊은 총리 토니 블레어가 야당 당수로 있을 때 한 연설을 보자. “나는 우리가 젊은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 공동의 목적을 가진 나라, 고이 간직하고 살아갈 이상이 있는 나라, 그날 그날 도전에 대비하는 단결된 나라, 국민이 나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노력해주는 것에 바탕을 둔 나라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 李총재가 해야할 일 ▼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시구와도 같은 연설을 우리 정치인들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 정치는 척박하고 건조하다. 듣느니 쇳소리요, 선동이요, 야유요, 상투적 수사다. 여당 야당 가릴 것이 없다. 가뜩이나 세상 살기 고달픈데 정치마저 가파르기 짝이 없다. 정치가 국민을 위로하기는커녕 짜증나고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국민은 정치에 등을 돌린다. 정치가 국민을 끌어안지 못한다.

이회창(李會昌)씨가 한나라당 총재로 선출됐다. 경선을 통한 총재선출로 한나라당은 비로소 권위있고 정통성 있는 리더십을 갖추게 됐다. 이회창씨의 ‘힘있는 야당, 책임있는 야당’이라는 구호가 한나라당 당원들의 지지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반 국민은 이회창씨의 야당총재 당선에 큰 관심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이 과거의 야당과 오늘의 야당의 차이라면 차이겠고, 그 차이는 오늘의 야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데서 왔을 것이다.

이회창씨는 이 차이를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해답은 역시 감동이 아닐까 한다. 감동 없이는 한나라당에 등돌린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역사적 전환을 보여줘야 한다. 새로 태어나는 고뇌와 진통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에게 진심으로 호소해야 한다. 감동적 전환없이 한나라당에 팡파르는 없다. 시는 진심이 흘러넘치는 곳에서 탄생한다. 진실을 담는 그릇이다. 이회창씨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 먼저 반성하고 참회를 ▼

이회창씨는 지금의 한나라당이 국민의 희망을 꺾고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는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겸허하게 수긍해야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그를 지지했던 1천만표와 이번 당내 경선에서 그가 얻은 55.7%의 지지율에 자족하고 안주해서는 안된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한나라당을 좋아한다기보다 정략적 지역적 계층적인 이유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공동여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고의로 외면하거나 이에 맹목적으로 기댈 때 한나라당에 미래는 없다.

감동을 주려면 한나라당은 먼저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 나라를 이 어려운 처지에 몰아넣은 책임이 지난 정권의 집권여당이던 한나라당 자신에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국민에게 머리 숙여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리고 국난 극복에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동참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한나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잃어버린 유권자를 찾아나서는 첫번째 발걸음일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지난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한 적이 없다. 이회창총재 자신도 지난 대선과정이나 이번 총재경선에서 진심어린 사죄의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래서는 안된다. 반성과 참회 위에서 한나라당은 결속과 도약을 기약해야 한다. 야당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국민을 무시하거나 국민이 외면하는 야당은 ‘힘있는 야당’이 될 수 없다.

▼ 국난극복에 동참해야 ▼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정치세력,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내세우는 ‘이회창 한나라당’이 정말 국민에게 사랑받는 야당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국정에 책임지는 야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낡은 이해관계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대의 요구와 국민의 소망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정치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한 순수한 직관 없이는 안된다.

한나라당이 순수한 직관을 통해 야망을 시구처럼 읊는 야당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감동을 주는 야당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김종심(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