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이 사람이 결국 또….”
이모변호사(60)는 지난달말 신문을 보다 혀를 끌끌 찼다. 그는 91년 초 요즘 고액과외사기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김영은(金榮殷·57)씨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
당시에도 김씨는 89년경부터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일대에서 ‘영재학원’‘수도학원’‘새수도외국어학원’ 등으로 간판만 바꿔가며 무등록학원에서 사기성 고액과외 ‘영업’을 해온 혐의를 받고 검찰에 구속기소된 상태였다.
김씨측은 ‘재판에서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는지 당시 고위직 검사생활을 막 끝낸 이변호사에게 변론을 의뢰했다. 이변호사는 김씨가 이전에도 비슷한 전과가 있고 죄질이 나빠 내키지는 않았지만 ‘고객’인 김씨의 변론요구를 뿌리칠 수는 없었다.
4개월여의 지루한 재판 끝에 결국 김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젠 나이도 있고 하니 성실하게 사세요. 지금처럼 돈을 버는 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재판이 끝난 뒤 이변호사는 김씨를 몇번이나 타일렀다. 김씨도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는 안하겠다”며 몇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7년. 까맣게 잊고 지냈던 김씨의 ‘근황’을 언론을 통해 다시 전해듣게 된 이변호사는 서글픈 마음과 함께 배신감마저 들었다. 자신의 변론으로 풀려난 김씨가 세포분열하듯 더 많은 교사 학생 학부모들을 끌어들여 사기를 치고 있었을 줄이야….
“지금처럼 조직적이진 않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김씨의 수법도, 돈이 얼마나 들든 내 자식만은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상류층 학부모의 이기적인 자식사랑도. 그러나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건 이런 사건이 계속 되풀이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학벌 만능주의입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