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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리뷰]북한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보고

입력 | 1998-09-02 19:15:00


‘역사적 사건’은 너무나 싱겁고 단조로워서 끝까지 지켜보는데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북한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TV로 국내 첫 공개한 것은 남북 문화교류 측면에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오랫동안 금기였던 금단의 열매가 갑작스럽지만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점은 ‘북한영화는 어떤 모습일까’를 궁금해하던 입장에서는 재미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지루한 역사강의같은 실체를 확인하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북한의 예술영화(극영화)는 노동당 정책과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를 수행하고 미화하는 교육, 선전 역할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어떤 영화도 예외가 없고 ‘안중근…’ 또한 마찬가지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불안한 생존을 유지하던 대한제국의 혼란스런 상황의 묘사, 안중근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하기까지의 과정, 침략의 원흉을 처단하기만 하면 모든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앞에 당황하며 앞날을 밝혀줄 위대한 지도자의 등장을 갈망하는 모습(이 부분은 삭제되었다)을 차례로 연결한 것은 북한영화의 전형적 구성이다.

국난의 위기가 닥쳤는데도 사욕과 보신만을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 넘치는 애국심과 충성심으로 무장한 개인을 대비하면서 민중을 이끌고 영도할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짓는 3단계 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영화의 진행은 설명이 많고 평면적이다. 중요한 대목에서 반드시 주인공의 대사나 나레이션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영화를 교육과 선전의 효과를 강조하고 극대화하기 위한 방식이다. 이런 구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북한영화에서 감독보다 영화문학(시나리오)이 더 중요하게 대우받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안중근…’은 남북한 영화교류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지만 북한영화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시켜주었다. 다만 결론 부분의 중요한 대목을 삭제하는 바람에 북한영화의 실체를 확인하는데 치명적 한계를 드러낸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희문(상명대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