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영화의 마지막 보루’‘장편이 산문이라면 단편은 영화의 시….’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장편에 밀려 찬밥신세인 단편영화들. 간혹 비디오로나 돌려보곤 했던 단편영화들이 극장에서 처음으로 상영된다.
동숭아트센터(서울 종로구 동숭동)는 5일 예술영화전용관에서 단편영화 3편을 묶어 개봉하는 ‘동숭단편극장’의 문을 연다. 3편의 영화는 ‘간과 감자’(감독 송일곤·22분) ‘스케이트’(조은령·10분) ‘햇빛 자르는 아이’(김진한·17분).
올해 폴란드 토룬 국제영화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탄 ‘간과 감자’는 홍콩 왕자웨이(王家衛)감독이 보고 격찬하며 지난달 방한했을 때 지원방안을 논의했던 작품. 단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잘 짜여진 이 영화는 전쟁과 가난이 삶에 드리우는 암울한 그림자, 희생과 용서 등 묵직한 주제를 푸른빛 영상에 세련되게 담아냈다.
‘스케이트’는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이미 유명세를 탄 흑백영화.
또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최우수 창작상을 탄 ‘햇빛 자르는 아이’는 한 가난한 소녀의 오후를 소재로 일상속에 잠복해있는 섬뜩한 비극을 아름답고 강렬한 영상에 담아냈다.
단편영화 개봉에 맞춰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극장배급 등 유통구조를 공동으로 개척하기 위한 모임도 발족한다. 김진한 송일곤 조은령 세 명의 감독은 동인모임인 ‘3호선’을 구성, “단편영화를 습작영화로 보는 인식을 거부하고 고유한 창작영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완성도 있는 단편영화를 지속적으로 공동제작하고 유통과 배급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로 뜻을 모았다.
동숭아트센터도 분기마다 국내외 우수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단편극장을 정기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어서 모처럼 단편영화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숨통이 트이게 됐다. 이같은 기회가 정착된다면 대학과 동아리에서 ‘영화를 하는 젊은이들’, 한 세대 전의 ‘문학 청년’처럼 영화에 목숨건 오늘날의 ‘영화 청년’들이 뜻을 펼 기회가 한결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영화 발전에 찰진 밑거름이 되리라는 기대가 이는 것도 이때문이다.
‘동숭 단편극장’은 매주 금요일 오후6시 상영이후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며 개봉 전날인 4일 오후6시에는 어어부밴드의 공연이 함께 하는 유료전야제를 열 계획이다. 02―741―3391(교 563)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