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막을 올려 한달보름간 계속되는 ‘98 서울국제연극제’를 기획 운영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를 위해 이번 연극제는 총 38편의 연극 공연외에도 야외 독백무대, 분장쇼 등 연극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대행사들을 많이 준비하려 했다. 또 평소의 반값으로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서울티켓, 관람권을 보여주면 식사나 음료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연극제 참여업소 확대 등을 통해 ‘축제다운 연극제’를 만들려 노력했다.
대한민국 연극제가 시작된 것은 벌써 22년전이다. ‘대한민국 연극제가 왜 서울에서만 열려야 하는가’라는 지방 연극인들의 항의 때문에 얼마전부터는 서울연극제와 지방연극제로 분리되었는데 애초 연극을 지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이러한 연극제들이 축제라기보다는 참가 지원비와 상금이 걸려있는 연극경연대회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해왔다.
그런데 필자가 7월 프랑스 아비뇽축제에 참가하는 동안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즐거운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축제를 위해 일하는 스태프부터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스태프가 즐겁지 않으면 자연 인력들이 자주 바뀌게 되고 축제의 노하우는 축적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축제 분위기마저도 무거워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52년 역사의 아비뇽 축제에서 일하는 스태프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즐겁게 일하는 그들의 태도도 본받아야 하겠지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문화’와 ‘장치’가 더욱 부러웠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하나의 일사불란한 명령 지휘 체계에 의해 일하는 데 익숙한데(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던 젊은이들마저도 이같은 방식으로밖에는 일할 줄 모르는) 비해 이들은 남의 영역이나 전문적인 견해를 우선적으로 존중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또한 아비뇽축제는 일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장치도 있었다. 축제스태프를 위하여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3시까지 열리는 클럽하우스를 만든 것이다.
고등학교 실내체육관과 정원을 빌려 조명 등을 이용해 환상적으로 탈바꿈시킨 뒤 음료나 안주를 무척 싸게 또는 무료로 제공했다. 밴드가 있어 춤을 출 수도 있는데 밤늦게까지 이곳은 연극인들과 축제스태프로 와글거리며 활기에 넘쳤다.
우리 사회가 다른 사람의 작업을 존중하고 전문가의 판단을 충분히 인정해 줄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즐거운 축제를 위한 ‘장치’라면 우리도 당장 만들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에서 몇가지 아이디어를 서울국제연극제에 펼쳐보았다. 그중 하나가 ‘연극인이 즐겁고 또 주목받을 수 있는 연극제’를 위한 ‘마티즈 연극인 클럽’이다. 대학로 문예극장 옆 노천에 마련한 이 클럽은 비록 영업시간이 제한되고 열악한 예산 때문에 주머니가 얄팍한 연극인들을 대접하기에 충분치 않다. 그렇지만 때로는 저녁 늦게 공연을 마치고 모인 연극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스스로 즐거운, 그래서 보는 관객까지도 즐거워질 수 있는 축제가 이렇게 시작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강준혁 (서울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