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진 때로부터 꼭 반세기가 흘러 9일에는 ‘공화국 창건’ 50주년을 맞이한다. 89년과 92년 사이 세계의 거의 모든 공산정권이 무너졌는데도 북한은 오늘날까지 버텨 온 것이다. 북한에 소비에트정권을 만들어내는 데 실질적 주역을 맡았던 소련도 해체됐음을 상기한다면 북한의 연명(延命)은 놀랍기조차 하다.
▼ 北정권 존속의 「비법」 ▼
5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최고인민회의에서 당 총비서 김정일(金正日)의 국가주석 추대가 유력시된다. 북한의 권력구조에서 국가주석은 그렇게 중요한 자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방의 일부 관찰자들은 김정일이 국가주석직을 ‘원로 공산주의자’에게 넘겨주거나 아예 폐지시킬 것 같다는 추측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국가주석직을 맡았던 사람은 김일성(金日成) 한 사람뿐이었고 자연히 주석이란 명칭은 김일성과 동일시되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도, 없앨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떻든 김정일이 국가주석을 겸임하게 되면 김일성이 남겨놓았던 자리는 모두 김정일에 의해 채워지며 이로써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공식적으로 완료되는 셈이다.
이 사실 또한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김일성 사망 직후 많은 관찰자들은 김정일의 권력상황을 불안정하게 보았다. 김정일의 몰락, 그리고 북한이라는 국가의 소멸까지 때때로 예견되곤 했다. 그러한 전망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었다. ‘침몰이 깊숙이 진행되는 난파선’에 비유될 정도로 파탄이 난 국가경제, 그것이 압축적으로 표출된 수년 동안의 심각한 식량 위기, 그리고 마침내 나타나기 시작한 탈북자의 행렬 등은 김정일과 북한의 장래를 모두 비관적으로 보도록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김일성이 사망한 지 50개월이 지난 오늘날의 시점에서 볼 때 붕괴론은 현실과 거리가 먼 것 같다. 적어도 5년 정도의 시간대(時間帶)를 놓고 북한의 앞날을 전망한다면 김정일과 북한의 존속은 확실해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면 무엇이 존속을 뒷받침하고 있는가. 그 해답은 아무래도 북한의 특유한 성격에서 찾아야 하겠다. 사회과학의 일반 이론, 아니 평범한 시민의 상식으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통용되는 북한 사회의 독특한 성격이 상식을 뛰어넘는 존속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뜻이다.
▼ 어버이와 자녀의 관계 ▼
북한의 특유한 성격은 우선 ‘가족주의적 국가관’에서 찾아진다. 수령은 온 백성의 ‘어버이’이고 이 ‘어버이’가 온 백성을 자신의 자녀처럼 돌보며 온 백성은 이 ‘어버이’에게 충성으로써 효도를 다해야 한다. 이처럼 ‘베풀어주는 사랑’과 ‘바치는 효도’의 교환체계 속에서 북한은 하나의 거대한 ‘김일성 가족 국가’가 된다. 따라서 ‘어버이’에 대한 반란 같은 것은 일종의 존속살인과 같은 큰 죄로 인식된다.
북한의 특유한 성격은 또 ‘신(新) 전체주의론’에서 찾아질 수 있겠다. 호주국립대 게이번 매코맥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상상을 뛰어넘는 국가적 폭력과 감시 및 세뇌의 복합에 바탕을 둔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 국가’다. 민주사회가 중시하는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히 부인되어 심지어 한 개인의 처녀성 여부가 국가에 의해 조사되기조차 한다. 바로 그러한 내용의 ‘신 전체주의’에 의해 북한의 공산정권은 지탱되는 것이다. 여기서 굳이 매코맥 교수를 인용하는 까닭은 그가 오랫 동안 북한을 높이 평가한 국제적으로 저명한 마르크시스트 역사학자였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북한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북한의 본질을 ‘신 전체주의론’으로 꿰뚫어 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언제까지 고립될텐가 ▼
마지막으로 북한의 특유한 성격은 ‘게릴라 국가론’에서 찾아질 수 있겠다. 북한의 통치자들은 북한을 ‘미 제국주의와 남조선이 침략의 기회만 엿보는 곳’으로 따라서 수령을 이러한 외침(外侵)에 대항하는 최고사령관으로, 그리고 인민을 게릴라 병사로 의제(擬制)시켜 놓은 것이다. 이 의제가 존속하려면 군사적 긴장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전체주의적 독재는 군사적 긴장 위에서 번영한다”는 병영국가론의 명제는 그래서 성립되는 것이다.북한이 최근 착점(着點)이 태평양에 이른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배경에는 그러한 고려도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특유한 성격만으로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까. 국경 없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21세기 정보화 세계화의 보편적 흐름에 끝까지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인류사회의 보편성과 북한사회의 특수성 사이에서 북한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김학준 (인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