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父子)도둑이 있었다. 아비의 솜씨를 모두 물려받은 아들. 스스로 아비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들을 부잣집 보물창고 안으로 들여보낸 아비.
밖에서 자물쇠를 잠근 뒤 흔들어 주인이 달려오게 했다. 주인이 잠긴 문을 보고 돌아서려는데 아들은 일부러 쥐가 문을 긁는 소리를 냈다. 자물쇠를 여는 순간 쏜살같이 빠져나간 아들. 추적을 피해 연못가를 돌다 물에 뛰어든 것처럼 큰 돌을 못에 던졌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당연히 따질 수밖에. 아비는 말했다. “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응용이 무궁하다.
더욱이 곤궁하고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솜씨를 원숙하게 만드는 법. 너를 궁지로 몬 것은 너를 안전하게 하자는 것이고 위험에 빠뜨린 것은 너를 건져주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시대 문신 강희맹이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쓴 글에서 나오는 얘기다. ‘족집게 과외’로 시끄러운 요즘 세상에 따끔한 일침을 던져준다. 악한 일도 스스로 곤경을 헤치고 깨달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니 다른 일은 말해 무엇하리.
IMF시대에도 ‘과외불패’의 신화는 여전한가 보다. 부모들은 물론 자식사랑을 내세우리라. 하지만 내 아이 앞을 가로막는 어떤 장애도 용납할 수 없다는 욕심이 결국 자식 마음에 대못을 박은 셈. 자신 때문에 쑥밭이 된 집을 보는 심정이 어떨까.
그들은 소수라 치고, 우리들의 자식사랑법은 과연 건강한가. 네게 좋은 것은 내가 더 잘 안다는 오만, 자식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는 맹목적 사랑, ‘널 위해 그렇게까지 했는데’라는 보상심리까지….
비바람을 대신 막아주는 것만이 부모역할은 아닐 것이다. 실패할 자유, 또 그 실수로부터 배우는 기회를 주는 것은 더 소중하다. 그래야만 아이도 언젠가 닥칠 삶의 고비를 이기는 힘을 얻지 않겠나.
고미석 (생활부)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