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절 행사 준비
김정일(金正日)시대를 연 북한의 제10기 제1차 최고인민회의 결과는 당초의 예상과 전망에서 크게 벗어난다. 왜 김정일은 주석직을 폐지하고 자신이 이미 맡고 있던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권력승계를 마무리했을까. 또 국가지도기관에 대한 개편과 인사를 단행하면서도 새로운 국정지표나 정책들을 제시하지 않았을까.
북한은 이번에 신설한 헌법 서문을 통해 “김일성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시며 그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 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한 김정일이 ‘김일성 유훈(遺訓)통치’를 헌법에 법제화함으로써 통치에 필요한 권위와 안전판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마치 걸출한 운동선수의 등번호를 후배선수들이 쓰지 못하도록 영원히 결번으로 남겨놓음으로써 그의 기량에 대한 팬들의 무한한 존경심을 신비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통치방법이라는 얘기다.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다시 그자리에 오른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현대 국가에서 전시(戰時)상태나 쿠데타에 의한 군정을 제외하면 국방책임자의 이름으로 국민을 통치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따라서 이는 김정일이 정상적인 통치방법으로는 경제난을 비롯해 북한이 겪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병영국가’식의 통치를 선택한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북한이 대내외정책, 특히 대남정책에 대해서 어떤 이니셔티브도 취하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체제와 노선을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것으로 바꾼다고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산물로서의 제반 정책 역시 새롭게 제시할 게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남북관계 역시 당분간 큰 변화나 진전이 없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민간 차원의 경협 등은 선별적으로 추진하겠지만 남북 대결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정부간의 실질적인 대화에는 응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