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명성을 지닌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가 6일 자택에서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 프랑스 학자가 “일본에는 두명의 왕이 있다. 왕궁에 살고 있는 일왕과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의 왕인 구로사와 아키라가 있는 것이다”고 평가했을 만큼 구로사와는 전세계 영화계에 큰영향을 미쳤다.
그의 영화세계는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 대중성과 예술성의 절묘한 조화로 요약된다. 진한 휴머니즘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탁월한 테크닉의 영상미학에 담아낸 거장이었다. 일본인 특유의 ‘창조적 모방’을 영화에 적용시켜 ‘구로사와를 보면 일본을 알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50년에 만든 ‘라쇼몬(羅生門)’. 진실과 사실과의 차이, 인간 본성의 불가해성을 이야기한 이 작품으로 51년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이어 54년엔 세계 최고의 전쟁서사시라는 격찬을 받은 ‘7인의 사무라이’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아 영상미학의 절정기를 구가했다.
1910년 도쿄에서 사무라이 집안의 후손인 체육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를 꿈꾸었던 그는 형의 자살과 누나의 병사(病死)를 겪은 뒤 26세에 영화계에 입문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깊이 받아 33세때 ‘슈카타 산시로’로 감독에 데뷔한 이래 피폐한 시대상과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의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이같은 주제의식 못지않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뛰어난 형식미. 정적인 이미지와 동적인 액션의 조화, 몽타주와 롱테이크의 적절한 구사를 통해 극의 긴장감을 강조하는 편집….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지, 조지 루카스 등 서구의 유명 감독들이 지금도 구로사와를 자신들의 영화의 스승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후기에는 미학적으로 완벽해지고자 하는 집념과 일본적인 것에 대한 집착으로 답답한 틀속에 갇혀버리는 경향을 보였다.
영화흥행 실패후 담석증이라는 육체적 고통까지 겹쳐 71년엔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다시 재기한 그는 83세때인 93년 ‘마다다요’란 영화를 만드는 등 변함없는 영화에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51년 동안 30편의 영화를 만들어 82년 세계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10대 감독에 동양에선 유일하게 선정됐고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영화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은 점이 인정돼 90년 아카데미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