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타카’는 SF 매니아들에게는 모처럼 만나는 정통 SF영화.
5월 개봉당시 흥행성적은 저조했지만 SF형식만 빌린 액션영화들과는 달리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영화의 배경은 ‘생명의 설계도’인 DNA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조작까지 가능한 미래사회. 돈 많은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좋은 유전자만을 가진 우성인간을 자식으로 낳지만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열등인간으로 냉대를 받는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주인공 빈센트의 꿈은 토성 여행. 그는 토성우주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가타카’에 들어가고 싶어하지만 ‘엘리트의 집합소’인 ‘가타카’에는 우성인간만이 들어갈 수 있다.
우성인간의 유전자와 혈액을 빌려 우성인간 행세를 하며 ‘가타카’에 들어간 주인공은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자신의 정체까지도 위협받는다.
‘가타카(GATTACA)’는 DNA 염기서열인 A C G T만으로 만들어진 회사명. 유전자만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미래 사회를 상징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생물학적 지식이 만들어낸 끔찍한 계급사회를 보여준다. 시간적 배경은 ‘가까운 미래’.
머지않아 유전자만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계급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감독의 주장은 현재 진행중인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생각해 보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세포 안에 들어있는 30억자 유전암호를 하나씩 해독해서 완전한 유전자 지도를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이다. 90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무려 4조2천억원이 투자될 이 계획은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여러 나라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8년이 넘은 현재 밝혀진 유전자 염기서열은 약 2% 정도. 지금까지는 대략적인 유전자 지도를 만드느라 계획보다 진행이 많이 늦어지고 있다. 그러나 빠르고 경제적인 방법들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성공하게 되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암이나 치매 당뇨병에서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까지 유전자가 관련된 3천여종의 질병을 고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유전자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영화 ‘가타카’처럼 유전자만으로 인간을 판단하고 대하지 않도록 사회적인 법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박사과정)jsjeong@sensor.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