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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왜 오르나?]「뉴욕發 도쿄行」 돈물결타고 강세

입력 | 1998-09-08 19:29:00


‘쨍하고 해뜰날.’

요즘 연일 강세를 보이는 일본 엔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날개를 접은 듯 추락을 거듭해 올들어서만 12%나 가치가 떨어졌던 일본 엔화.

일본경기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인데 엔화가치는 도대체 왜 오르는가.

▼왜 오르나〓엔화가치가 올랐다기보다는 “달러화 가치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는 엔화뿐만 아니라 독일 마르크화, 프랑스 프랑화 등 주요국 통화가치가 최근 달러화에 대해 일제히 강세인 데서도 알 수 있다.

달러화 가치하락의 결정적 요인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5일 미국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것.

금리가 떨어지면 돈이 미국에서 빠져나갈 것은 당연하다. 달러화표시 자산의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은 7월 하순에도 똑같은 얘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특히 반향이 컸다. 여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투자자들의 판단 때문이었다. ‘8년 호황’을 즐기던 미국경제가 러시아 아시아 중남미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뚜렷이 위축되고 있어 금리를 낮추는 경기부양책을 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

지난달 11일 달러당 1백47엔대를 기록했던 엔화가치가 8일 1백31엔대까지 치솟을 만큼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처럼 미국의 금리인하설에 따라 미국을 빠져나온 뭉칫돈이 잠시 머무를 곳으로 일본 엔화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뉴욕발 도쿄행’ 돈물결의 선두에는 투기적 헤지펀드가 앞장섰다. 러시아 외환시장 붕괴로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를 본 이들은 평가손을 만회하기 위해 엔―달러 환율이 1백10∼1백20엔대에 사둔 달러를 내다 팔았다.

▼언제까지?〓‘엔화 강세가 아니라 달러 약세’라는 표현은 엔화 오름세가 오래 가기 힘들다는 것을 말한다.

헤지펀드가 일본을 찾은 이유는 미국 뉴욕증시의 불안을 잠시 피할 피난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자금은 곧 미국으로 되돌아갈 공산이 크다.

미국 금리인하는 미국내 자금의 해외유출뿐만 아니라 은행예금의 증시복귀를 뜻한다. 또 FRB의 금리인하는 기본적으로 경기를 부추기기 위한 조치다. 국제금융전문가들은 “미국의 경기부양 영향으로 뉴욕증시는 곧 회복세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본다.

더욱이 유념할 것은 엔화가치가 폭락했던 한달 전과 비교할 때 일본경제의 기본구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정부는 금융개혁 법안처리를 여전히 미적거리고 있다. 감세(減稅) 소비세인하 등 경기부양정책에도 적극적이지 않다. 더욱이 이달말 발표될 98회계연도 상반기 결산공고에서 상장기업의 당기순이익은 대폭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의 엔화강세는 또하나의 거품인 셈이다.

〈허승호·김승련기자〉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