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생각▼
최윤영(26·주부·서울 양천구 목4동)
남편과는 만난지 일곱달만인 지난해 2월 결혼에 골인했죠. 짧은 연애시절에는 ‘아직은 내 것이 아니니까’라는 생각에 남편의 삐삐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부부 사이에요. 서로의 인간관계를 투명하게 보이면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 심리가 그렇쟎아요. 굳이 숨기려고 하면 더 호기심이 생기고 불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마라’고 하는 건 바른 태도가 아니에요. 만일 제가 남편에게 가계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남편은 ‘혹시 이 사람이 엉뚱한 데 돈을 쓰는 게 아닐까’ 의심할 거에요. 집안살림만 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밖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은 아내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제가 매일 남편의 음성사서함만 확인할 사람도 아니에요. 서로 편안하게 터놓고 지내자는 얘기죠. 다른 여자가 녹음을 남기더라도 ‘누가 어떤 일로 녹음했다’고 설명해주면 저도 이해할 수 있어요. 밖에서 남편과 함께 만날 수도 있는 일이고요. 사생활 보호를 내세워 비밀번호를 꼭 숨겨야만 하나요. 그랬다가 나중에 오해할만한 일이 생기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을거에요.
▼남편생각▼
김형권(33·LG홈쇼핑 마케팅팀 대리)
아내가 몇 번 제 삐삐의 비밀번호를 가르쳐달라고 졸랐지만 아직 알려주지 않았어요. 삐삐의 음성사서함은 일기장이나 똑같은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부부가 일심동체라지만 서로 존중해줘야 할 프라이버시는 있는 법입니다.
회사에 일이 있거나 술자리가 있으면 아내에게 꼭 어디있다고 전화하고 자정 쯤에는 집에 들어갑니다. 그 정도면 아내에 대한 예의로 충분하지 삐삐 비밀번호까지 알려야줘야 할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 녹음을 남긴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봐도 또다른 누군가가 듣는다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요.
만약 아내가 비밀번호를 알게 돼 남편 삐삐에 녹음된 걸 듣다보면 사소한 일에 과민해질 수 있을 겁니다. 때로는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히거나 잘못 걸려온 메시지가 남기도 합니다. 전에 한번은 “오빠, 나 때문에 마음 많이 상했지. 앞으로 잘해줄게”라는 엉뚱한 녹음이 있어 혼자 웃은 적이 있어요. 이럴 때 아내가 들었더라면 쓸데없는 부부싸움이 벌어졌을 겁니다. 조그만 불신이 더 큰 불신을 낳을 수도 있구요. 부부는 서로 믿고 사는 건데 굳이 남편의 삐삐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