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얼어붙은 후 풍자 소극(笑劇) 몇편이 무대를 휘저은 것은 감당키 어려운 현실을 우회하는 전법이었을까. 그러나 극단 한강은 피해 가지 않았다. 지난 봄 부산 해운대에서 벌어졌던 30대 실직자 호성환의 자살사건을 무대로 옮겨온 ‘단장곡(斷腸曲)’.
날품팔이 건설노동자로 전전하며 전신불수 노모를 16년간 수발해온 노총각 호성환(엄태옥 분).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목을 맨다. 말 못하는 어머니는 이웃에 발견되기까지 9일간 아들의 시신 곁에서 몸부림쳐야했다.
극단 한강 단원들이 공동창작한 이 작품은 호성환의 넋을 불러내 가난한 모자가 낭떠러지로 몰려가기까지의 과정을 거꾸로 필름을 돌리듯 한 컷씩 증언하게 했다.
“외로워. 사는 게 너무 외로워. 미용학원도 제빵학원도 다녀봤는데 다 벽이야. 넘어갈 수가 없어. 난 살고 싶어. 뙤약볕 아래 동료들과 막걸리 마시며 일하고 싶다.”
연출자 장소익은 두명의 여자 저승사자를 끌어들여 호성환의 혼이 처한 상황을 노래하게 하는 등 현실과 무대의 사이를 두었다. 그러나 그런 연극적 장치가 오히려 어색하다. 호성환 모자의 비극이 너무 처절하고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살아있는 한 완전한 절망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그러나 ‘단장곡’은 우리가 쉽게 희망을 품을 수 없는 현실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준다.
11월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소극장 오늘. 화∼목 오후 7시반 금토 오후4시 7시반 일 오후4시 02―762―6036.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