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를 되돌아보면 역사는 반복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최근 10년 사이 우리는 네번 연속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맞았다. 88, 92, 96년 세차례 국회의원총선거 결과는 모두 여소야대였다. 그리고 올해는 수평적 정권교체로 여야가 뒤바뀌는 바람에 또다시 여소야대가 됐다. 그런데 이 네번의 야대(野大)는 또 매번 인위적 여대(與大)로 되돌아 갔다.
▼ 인위적 정계개편 재연 ▼
88년 4·26총선은 선거를 통한 최초의 여소야대라는 점에서 선거사에 획기적인 변화로 기록된다. 여야 나눠먹기식 1구2인제를 버리고 소선거구제를 부활시킨 후 첫 총선이었다. 78년 12·12총선 때 득표면에서 야당이 처음으로 여당을 1.1% 누른 적은 있지만 그때도 의석수로는 여당이 앞섰다. 집권 민정당은 4·26총선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평민 민주 공화 4당간의 세력균형은 절묘했다. 모처럼 대화와 타협의 큰 정치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90년1월 이른바 3당합당으로 하루아침에 여대정국이 돼버렸다.
92년 3·24총선 때도 집권 민자당의 참패로 원내 의석분포는 또한번 여소야대가 된다. 그러나 이 역시 의원영입과 정주영(鄭周永)씨의 국민당 와해로 다음해 2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취임할 때는 어느새 여대정국이 형성돼 있었다.
96년 4·11총선 또한 여당의 패배였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집권 신한국당은 원내 과반의석에서 11석이 모자라는 1백39석을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그런 여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야당의원 빼내기와 민주당 통합에 발벗고 나선 결과 여당은 한때 기세좋게 1백69석까지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 역사는 돌고돌아 우리는 이번에 또다시 여소가 여대로 바뀌는 진풍경을 목도하고 있다. 지난해 12·18대선 때 1백21석이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립여당은 1백54석으로 원내 과반을 훌쩍 넘어섰고 1백61석이던 한나라당은 1백39석으로 오그라들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분통터지는 일이겠으나 지금의 1백39석이 96년 총선 때와 똑같은 숫자이고 보면 본전치기를 한 셈이다.
▼ 자만-독선-독주 유혹 ▼
그렇다면 연립여당은 이제 정국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은 만큼 마음놓고 샴페인을 터뜨려도 좋을 것인가. 그동안 사사건건 거야(巨野)에 발목이 잡혀 속상해 하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그토록 바라던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한 지금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어 보인다. 비리의원 체포동의안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고, 강력한 정치개혁도, ‘제2의 건국’ 프로그램도 소신껏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마음만 먹으면 심지어 날치기까지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권은 이 시점에서 생각을 잘 해야 한다. 막강한 힘을 장악한 여대 그 자체가 바로 엄청난 부담이자 화근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의원영입에 착수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여건조성과 정국안정이지만 여대가 반드시 정국안정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벼랑끝 대결정치를 더 많이 불러왔던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정기국회 반쪽 개회식으로 이미 그런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 정권들처럼 여대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자만 독선 독주라는 이름의 함정이다. 힘이 있으면 자만하기 쉽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힘을 쓰게 마련이다. 그런 유혹에서 자유롭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설득-양보의 큰정치를 ▼
그러나 힘이라는 것은 요긴하게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오남용하면 자칫 앙화를 부를 수가 있다.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될수록 아끼되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게 쓸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리 여대라 해도 야당쪽의 협력과 호응이 없으면 생산적인 정치는 어렵다. 다수의 독주와 소수의 드러눕기식 저항이 격돌하는 구태(舊態)정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역시 대화와 타협, 설득과 양보의 큰 정치뿐이다. 그러자면 지금보다 몇배의 정치력이 요구된다.
김영삼정권의 실패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인위적 여대야소 끝에 걸핏하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 얻은 것이 무언가. 초보운전 시절이 지나고 자신감이 붙으면 방심하기 쉽다. 정권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출범 6개월을 넘기고 여대까지 이룩한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힘의 유혹이나 여대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부단한 자기점검과 자기경계가 필요하다.
남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