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 생기 가득한 숲속 일터가 너무 좋다.
몇개월간 계속된 실직생활. 좌절감과 원망으로 술에 찌들어 산 지옥같은 나날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두 아이들에게 ‘얼굴’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8월초 이곳을 찾아 왔다.
강원 강릉시 강동면 피래산(皮來山)의 해발 5백m 높이 능선. 가파른 산줄기를 오르며 낫으로 잡목을 솎아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김춘일(金春一·46)씨도 그중 한사람.
“서울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했는데 2월 부도가 났습니다. 다시 일어서 보려고 몸부림쳐 봤는데….”
산림청이 공공근로사업의 하나로 강릉국유림관리소에서 펼치는 숲가꾸기 사업 현장. 5백75㏊의 산에 연인원 2만3천명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사업장은 전국에 7백62곳. 그중 가장 크다는 피래산에는 김씨처럼 서울에서 원정온 실직자가 77명이나 일하고 있다.
다들 컨테이너 숙소에서 먹고 잔다. 하루 일당은 3만5천원. 한끼 식사비 2천5백원도 아까워 몸소 밥을 짓는다.
중동지역 공사현장에서 20년간 일했다는 전기배선공 김강범(金剛範·55)씨. 사막에서 어렵게 번 돈을 사업에 투자했다가 다 날리고 말았다. 술과 담배, 자학으로 점철된 지난 몇개월의 파산생활로 건강마저 해친 김씨.
그는 여기서 건강도 되찾고 사는 보람도 되새기고 있다. 대기업체 과장 출신인 임모씨(45). 그는 실직후 기원에서 친해진 다른 실직자 4명과 함께 이곳에 왔다.
“규칙적인 생활로 체중이 4㎏이나 빠졌죠. 묵은 체중만 빠진 게 아니라 정신속의 찌든 때도 빠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힘겨워서 떠나간 사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남은 ‘숲속 일꾼’들은 자연속에서 삶의 보람을 한껏 느낀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