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2월21일 김덕(金悳)통일부총리가 취임 2개월만에 전격 해임된 것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외교안보분야 인사 난맥상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안기부장에서 통일부총리로 자리를 옮긴 김부총리가 갑자기 해임된 것은 안기부장 시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기 검토’문건을 만들어 물의를 빚었다는 이유였다.
국민회의 권노갑(權魯甲)부총재는 안기부의 지방선거 관련 문건을 입수, 이를 폭로하고 정부가 지방선거 연기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공격했다.
정부의 자체조사 결과 이 문건은 안기부 중간간부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김부총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지만 도의적 책임을 느낀 김부총리는 한승수(韓昇洙)청와대비서실장을 통해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날 윤여준(尹汝雋)청와대대변인은 “안기부의 정치간여 오해를 불러일으킨 책임을 물어 김부총리를 해임한다”고 발표했다. 사의를 표명하면 사표를 수리하는 게 관례지만 김부총리는 ‘해임’되고 말았다.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증언.
“김대통령은 야당의 공세에 부담을 느끼고 김부총리를 바꾸려 했어요. 나는 김부총리가 지방선거 관련문서사건에 직접 개입하지도 않았는데 경질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오히려 사표수리가 아니라 해임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지시했어요.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고 역공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김부총리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김부총리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분명히 사의를 표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생각만 하는 김대통령의 지시 때문에 ‘해임’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물러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