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극작가 이근삼(69)에게 올 가을은 특별한 결실의 계절이다. 극단 민중이 올해 ‘이근삼 희극제’를 상설연극제로 창설해 11월8일까지 대표작 3편을 장기공연하는 데다 서울국제연극제에서는 17일부터 그의 신작 ‘아카시아 흰꽃을 바람에 날리고’가 초연된다.
“불황에 그렇게 일을 벌이면 안된다고 말렸는데…좀 쑥스럽습니다.”
소감을 묻자 그는 청년처럼 씩 웃었다.
이근삼의 작품은 세월을 두고 여러차례 반복공연된다. ‘1회공연’이 부지기수인 창작희곡의 현실에서는 보기드문 일이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해석마다 거론되는 ‘희극성, 사실주의 연극의 탈피’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버팀목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작품속에서 그가 자아내는 웃음은 ‘울어야 할 상황에 짓는 쓴 웃음’ ‘뼈 있는 웃음’이었다. ‘아카시아 흰꽃을 바람에 날리고’에서도 평생 조역신세를 면치 못하던 노배우가 언론에 의해 ‘공로상 수상거부자’로 조작된 뒤 팔자에 없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있는데 정면공격은 허용되지 않는 시대에 택할 수 있는 방법이 희극이었습니다. 하지만 희극이 차선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희극은 민주적이고 관용있는 교양사회에서 흥성할 수 있는 양식입니다. 독재자들이 자신에 대한 풍자를 허용한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첫 ‘이근삼 희극제’에 선정된 3편의 작품은 ‘유랑극단’(극단 뿌리)‘꿈먹고 물마시고’(극단 민예)‘국물 있사옵니다’(민중극단). 애당초 뮤지컬로 만들어진 ‘꿈먹고…’를 포함해 이번엔 세 작품 모두 뮤지컬로 공연된다.
“창작할 때 늘 음악적 요소를 강조했기 때문에 뮤지컬로 만들어지는게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50년대 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뮤지컬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연기 노래 무용 3박자를 다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들이 없어 그냥 포기했었죠.”
‘이근삼희극제’는 11월8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명보아트홀’.평일 오후7시반 토,일,휴일오후3시 6시. 02―734―2010
‘아카시아 흰꽃…’은 1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문예회관 소극장. 오후4시반 7시반. 02―745―1214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