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6일 타계한 최종현(崔鍾賢)SK회장은 문민정부 시절 내내 전경련회장을 지내면서 적지 않은 일화를 남겼다.
94년 봄 청와대에서 열린 신경제 추진회의 때의 일화.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는 늦어도 30분 전까지 입장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는 회의 시작 5분 전에야 회의장에 나타났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연설문을 읽을 때도 그는 메모를 하는 대신 유인물을 접어서 유유히 부채질을 했다.
주위에서는 ‘더위를 많이 타나 보다’에서부터 ‘겁이 없다’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었다면 ‘손 좀 봐주는’ 조치가 뒤따랐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는 때때로 독특한 논리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 정부와 논전을 벌이곤 했다.
95년 2월 정부의 세계화 재벌정책이 발표됐을 때의 일. 당시 정책에는 소유분산을 통한 경제력 집중 억제, 문어발 경영의 관제탑인 기획조정실 해체 등이 포함돼 있었다.
최회장이 2월14일 입을 열었다.
“경제력 집중 억제는 세계화에 어긋납니다. 문어발이니 업종전문화니 하는 것은 에디슨이 전구 만들 때 이야기지요. 문어발을 하든 말든 규제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이틀 뒤인 16일 국세청이 SK그룹에 대해 세무조사를 시작했고 17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 내부거래 조사에 들어갔다. 최회장의 몸낮추기도 몹시 빨라 16일 홍재형(洪在馨)경제부총리를 찾아가 사과했다.
당시 전경련에서 나온 말. “문민정부는 정말 무섭습니다. 한번 잘못 보이면 뼈도 못추립니다.”
최회장은 97년 5월에도 “기업은 돈이 없어 죽을 판인데 한가한 경제이론 타령을 하고 있다”며 통화당국을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