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출범 초기에 삼성의 기세는 다른 그룹들이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였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
정권 출범 직후인 93년 6월의 이건희(李健熙)삼성그룹 회장의 ‘신경영선언’은 당시의 개혁 분위기와 맞물려 큰 호응을 얻었다.
고위 공무원들이 순차적으로 삼성을 방문해 연수까지 받으면서 ‘이건희 신드롬’이라는 신조어(新造語)까지 유행했을 정도였다.
삼성은 학력철폐 등 인사혁신, 계열사 축소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정부의 물가안정 호소에도 가장 먼저 호응해 전자제품 가격을 내렸다.
이같은 노력은 정밀화학 유통업 승용차 사업 진출 및 삼성중공업 공개, 조선설비 증설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회장의 베이징(北京)발언을 계기로 냉각됐던 관계는 4개월만에 어느 정도 풀리긴 했지만 문민정부 출범 초기의 ‘좋았던 관계’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96년 초에 시작된 반도체 가격 하락은 삼성과 한국경제의 동반몰락을 예고하는 적신호였다.
특혜시비를 무릅쓰고 천신만고 끝에 따낸 승용차 사업은 97년 중반부터 삼성그룹 전체에 부담을 주는 고민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97년 8월에는 기아자동차 인수계획을 담은 ‘신수종(新樹種)계획’ 보고서가 유출돼 큰 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여기에 3세 승계를 위한 증여방식을 둘러싸고 시민단체들로부터 받고 있는 집중포화 때문에 ‘신경영’이 내건 도덕경영은 적지 않은 흠집이 났다.
결국 삼성 내부에서는 “초기에 요란했지만 실속은 못챙겼고 이미지만 실추됐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