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서울 서초구 강남역사거리로 가면 뭔가 색다른 분위기로 가득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통통 튀는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몰려온 걸까.
▼ 거리의 변천 ▼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옛말.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은 젊은이의 물결에 나이든 어르신네들이 쫓겨나간 곳.
80년대 초만해도 이 지역은 제일생명건물 쪽에 성인상대의 고급유흥업소가 밀집돼 있었다. 82년말 강남역이 생기고 84년 지하철2호선이 완전개통되면서 ‘자식뻘’ 젊은이들이 밀려오자 룸살롱과 고급일식집의 손님들은 떠났다. 지금의 ‘±30대’가 과거 개척한 ‘디텍(디스코테크의 준말)’과 카페들이 강남역 사거리부터 제일생명 방향으로 7백여m가량 무성히 퍼져나가면서 ‘중년의 공간’을 확실히 밀어냈다.
서초1번가상가번영회 김용석(金容錫·52)회장은 “84년초만해도 이 지역 카페는 2개에 불과했으나 불과 5년만에 50여개로 급증했다”고 설명. 동아극장에 이어 뉴욕제과 건너편에 씨티극장이 생기고 대형음반판매점인 타워레코드가 들어서면서 90년대 강남역 주변은 다양한 문화공간도 확보한 거리로 변모.
▼ 영파워 ▼
10대후반∼20대초반이 70% 이상을 차지. 직장인들은 IMF사태 이후 구매력을 잃어 영향력을 더욱 상실했다. 넥타이차림으로 잘 나가는 디스코테크에 들어가려다간 퇴짜 맞기 십상.
점심시간엔 이 일대 빌딩가의 직장인들이 몰려나오나 오후4시경부터 젊은이들이 슬슬 거리를 장악. 오후6시만 되면 ‘일류 메이커’의 옷을 입은 젊은이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강남역 주변의 한 인터넷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은 “여기는 낮과 밤의 ‘물’이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8학군 고교졸업생들이 생맥주집 등에서 동창회를 여는 곳도 이 동네.
최근에는 유니텔 넷츠고 등 PC통신사와 통신서비스업체인 두루넷 등이 이 지역에 고객센터를 설치하면서 네티즌의 거리로도 자리매김. ‘번개모임(통신에서 대화하다 밖에서 직접 만나는 것)’을 갖거나 PC통신 동호회들이 정기모임을 벌이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것.
유니텔의 영어회화모임인 ‘프리토킹’ 소모임장 김강식씨(28·여·스위스그랜드호텔 객실부)는 “고객센터에서 매주 정기모임을 가진 뒤 근처 생맥주집 등에서 ‘2차’를 한다”고 설명.
마땅한 여가시설이 없는 지방캠퍼스의 대학생들은 스쿨버스의 주요 정류장인 이 곳에서 스트레스를 해소.
▼ 댄스 댄스 댄스 ▼
디스코테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리인만큼 주류 문화는 댄스. 형성 초기 ‘런던보이스’의 음악 등 유로댄스풍의 노래로 시작해 요새는 국내가수들의 댄스곡과 힙합이 유행. 성인나이트클럽과 달리 1인당 1만∼1만5천원이면 하루 저녁 신나게 춤출 수 있다. 록카페는 한 사람에 5천원 이하로도 즐길 수 있다.이밖에 씨티극장과 동아극장을 찾는 영화팬과 타워레코드에 모여드는 음악마니아, 진솔문고 동화서적 씨티문고 등을 찾는 독서파 등 다양한 문화소비자들의 집합처.
〈김홍중기자〉kima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