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전 김대중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국민의 자신감과 외국인의 신뢰를 이끌어내기 위한 ‘희망의 경제’ 설명회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가장 알찬 추석 선물을 받은 쪽은 경제장관들이 아니었나 싶다.
기자가 ‘분위기 일신을 위해 경제팀을 교체할 뜻이 없는지’ 묻자 김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현경제팀은 초기엔 약간 혼선이 있었지만 차츰 협조하며 잘 해나가고 있다. 오히려 힘을 실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경제장관들은 대통령의 격려에 안주해도 좋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지난달 DJ노믹스(김대중경제)를 정리한 책에서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을 다짐했다. 그렇다면 경제장관과 이들이 이끄는 부처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을 자문해봐야 한다.
첫째, 정책이 현장에 잘 스며드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제대로 점검하고 있는가.
올해 실업대책 예산이 5조6천억원에 이르지만 그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눈먼 돈’으로 낭비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관료와 그 주변단체들의 도덕적 해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부실기업이 망하고 기업주가 문책받고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듯이 정책집행을 부실하게 한 부처가 없어지고 장차관이 조사받고 공무원들이 정리해고된다면 이런 일이 예사로 일어날 수 있을까.
금융 구조조정에 수십조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예금 대지급이나 부실채권 매입에 따른 구상권 문제를 관련부처들이 제대로 챙기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장차관을 비롯한 관료들은 많은 예산을 따내 사업비를 많이 쓴 것을 마치 일 열심히 한 실적인양 내세우지만 그 누수를 고스란히 메워야 하는 국민은 정말 억울하다.
장차관들이 정책집행의 현장, 그것도 모양내기 좋은 곳을 골라 찾아다니며 그럴듯한 브리핑 받고 그럴듯한 지시 몇마디 하는 것이 마치 큰 뉴스나 되는양 사진을 찍어 돌리는 행태는 한심하다. 소리없이 현장을 점검해 문제를 예방하고 보완책을 강구하는 것이 본연의 책무 아닌가.
둘째, 각부처는 진정으로 민간 경제주체들에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부처이기주의를 버리고 협조하고 있는가.
정부는 집값의 30%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는 주택저당채권 유동화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9월초 임시국회에서 자산유동화법을 통과시켰다. 이 제도는 서민에게 내집마련의 꿈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의 관할권 싸움 때문에 후속작업이 표류중이다.
경제부처간에 서로 월권(越權)하거나 ‘밥그릇싸움’, 상대측의 기(氣)꺾기에 행정력을 낭비하는 사례도 적지않게 열거할 수 있다.
셋째, 각부처는 민간에 대한 감독과 규제에 절제심을 발휘하고 있는가.
재벌개혁이 미흡하다고 대통령이 지적하자 서너개 부처가 한꺼번에 기업들에 온갖 자료를 요구하고 사람을 불러대며 경쟁적으로 조사를 벌였다. 기업들은 파김치가 됐다. 이러고도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기업인들은 묻고 있다.
경제장관들은 위만 쳐다보지 말고 발밑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민간 경제주체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설익은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고 정책 네트워크를 재정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이 던진 ‘희망의 메시지’가 많은 국민에게 와닿을 것이다.
배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