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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칼럼]장묘文化부터 개혁을

입력 | 1998-10-02 18:11:00


오늘 개천절을 맞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한민족은 단군 할아버지의 피를 받아 단일언어 단일문화 단일역사를 5천년 가까이 이어 온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실제로는 남북으로 갈려 싸울 뿐만 아니라 남쪽은 남쪽대로 지역할거주의에 묶여 다투며 살기 때문이다.

우리 겨레의 건국기념일이나 다름없는 개천절이 독일의 통일절과 외교무대에서 ‘경쟁’하게 된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 범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꼭 8년 전인 90년 10월3일 동서독이 하나가 된 이후 이날을 통일절로 기념하게 되자 우리의 해외공관들은 독일의 해외공관들이 열게 되는 ‘통일절 기념 연회’와의 중복을 피하며 ‘개천절 기념 연회’를 갖게 됐으며, 때로는 독일의 통일절이 우리의 개천절을 압도하는 결과가 빚어지기도 했다.

▼시민곁에 묻힌 獨총리

여기서 우리는 잠시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됐던 세 사람의 서독 총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초대 총리 아데나워, 그의 후임 에르하르트, 그리고 사회민주당 당수로는 최초로 서독 총리가 됐던 브란트가 바로 그들이다. 아데나워는 독일통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통일의 과제보다는 서독을 내실있게 발전시키는 데 힘을 쏟았고, 에르하르트는 서독의 경제력을 건강하게 키울 때 통일의 기반이 닦아진다는 믿음 아래 ‘라인 강변의 기적’을 만들어냈으며, 브란트는 그렇게 마련된 서독의 국력을 바탕으로 동방정책을 과감히 추진해 동서독 사이에 교류와 협력의 대문을 여는 데 성공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 세 사람의 삶이 무척 검소하고 매우 서민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점은 그들의 묘지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들 모두 국립묘지 또는 기념관에 묻힌 것이 아니라 고향에 자리잡은 서민들의 공동묘지 한 구석에 잠들고 있다. 묘역도 묘비도 보통 사람들의 것과 똑같다. 아데나워의 경우 자동차에서 내려 한참 걸어 올라가야 겨우 만나게 되고 브란트의 묘비에는 ‘빌리 브란트’두 단어만 써 있을 뿐, 그 화려한 공직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中원로의 검소한 장례

반면에 동독 공산주의자들의 묘지는 훨씬 크다. 옛 소련의 크렘린 외벽(外壁)국립묘지를 그대로 본떠 동베를린에 세운 국립묘지에 동독 건국의 아버지 격인 울브리히트가 묻혀 있다. 어디 동독뿐이었는가. 지금은 모두 사라진 옛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들을 통치했던 권력자들의 무덤은 대체로 화려했다.

옛소련의 레닌과 스탈린,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불가리아의 디미트로프, 체코슬로바키아의 고트발트, 알바니아의 호자 등 모두 거창하게 마련됐다. 시체는 엄청나게 비싼 돈을 들여 미라로 처리됐다. 그러나 그들은 뒷날 대체로 파묘(破墓)나 이장(移葬)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백성들의 원한이 뒷날 그들을 끌어낸 것이다.

같은 공산국가이면서도 대조되는 나라가 중국이다. 베이징(北京)의 큰 기념관 속에 미라로 처리된 채 누워 있는 마오쩌둥(毛澤東)을 빼놓고는 다른 고위 지도자들의 장례는 검소하게 치러졌다.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잉차오(鄧潁超)부부가 대표적이다. 중국 공산당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저우는 장례 자체가 인민에게 폐가 된다며 아주 간소하게 화장할 것을 부탁했고 덩은 수의를 마련한다는 것도 인민에게 부담을 주니 평소에 입던 옷으로 염을 한 뒤 화장하라고 유언했다. 그들 모두 재가 되어 중국 강산에 뿌려져 무덤조차 없다.

여덟 원로들 가운데 한 사람이던 리셴녠(李先念)도, 중국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끈 역사의 거인 덩샤오핑(鄧小平)도, 그리고 보름전에 죽은 전 국가주석 양상쿤(楊尙昆)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지도자들의 이러한 자세가 모든 공산정권들이 무너지는 역사의 전환기속에서도 중국의 공산정권을 존속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좁은 국토를 생각하자

이렇게 볼 때 장례의 형식이나 무덤의 크기는 결코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나라에서도 장묘(葬墓)문화 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매장중심의 장묘문화를 화장중심으로 개혁하자는 국민운동을 전개할 ‘한국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가 며칠 전에 발족한 것이다.

좁디좁은 국토에서 1년에 여의도광장만한 넓이의 땅이 묘지로 들어가는 형편에 성묘의 계절인 추석을 맞아 묘지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작은 일에서나마 개혁을 성사시킴으로써 종국적으로 국가를 부흥시켜 보다 기쁜 마음으로 개천절을 맞게 되기를 바란다.

김학준(인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