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범종(梵鐘)의 꼭대기를 보면 용(龍)머리 모양의 고리가 달려있다. 용뉴(용 꼭지)라 하는 이 고리를 만들어 붙인 것은 당연히 종각(鐘閣)에 종을 걸기 위해서다.
그런데 종의 고리가 하필이면 왜 용 모양일까. 종과 용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옛날의 기록이나 전설에 따르면 원래 용에게는 아들이 아홉 있었다. 그중 첫째 아들인 포뢰(蒲牢)용은 울기를 잘해 소리가 우렁찼다. 그러니 이 포뢰야말로 소리를 내야하는 종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바닷가에 살던 이 포뢰는 또 고래를 무서워해 고래가 다가오기만 하면 놀라서 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종을 치는 막대기(당목·撞木)도 원래는 고래 모양의 나무였거나 고래뼈였는데 이것은 고래로 종을 두드려야만 종 꼭대기에 올라앉은 용이 무서워 더 크게 소리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당목은 통나무 막대기로 변해버렸지만 어쨌든 용과 고래, 그리고 종의 만남은 옛사람들의 절묘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전통 악기인 북의 북통에 용을 그려넣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이밖에도 고구려벽화 일반회화 불화 추녀마루 비석 기와벽돌 등 우리 문화유산에 너무나도 자주 등장해 마치 실존 동물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비석의 경우를 보자. 보통 맨 아래에서 한마리의 거북이 비석을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이 돌거북은 원래 몸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이었다. 돌비석에 등장했던 용은 아홉마리 아들 중 무거운 것을 들기 좋아하는 용이었다. 고려시대 비석엔 용머리가 나타나기도 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머리도 몸통도 온통 거북뿐이다.
기린 거북 봉황과 함께 4영물(靈物)로 꼽히는 용. 우리에게 예언자적 수호신으로 자리잡아온 용. 그 용을 말하는데 여의주와 발가락이 빠질 수 없다. 여의주를 물지 못한 용은 승천할 수 없고 승천하지 못하면 진정한 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용의 발가락 수는 힘과 권위의 상징이다. 용을 조각하거나 그리는데 있어 대체로 중국은 용 발가락을 5개로 표현했다. 우리는 4개, 일본은 3개만 나타냈다. 이에 대해 중국이 황제의 나라라고 해서 발가락을 더 많이 그려야한다는 통념 때문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우리 민초들이 그렸던 민화를 보면 발가락 5개인 용이 힘차게 비상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