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가 선정해 발표한 세계의 ‘사이버 엘리트’ 50인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세계의 정보통신 분야를 리드하는 ‘실리콘의 제왕’이란 호칭까지 부여하며 타임이 극찬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아, 이게 미국경제의 힘이구나’하는 것을 실감한다.
우선 50명 가운데 비미국인은 10명뿐이고 나머지 40명은 미국인 일색. 이들 40명이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게임 영화 전자상거래 콘텐츠 등 세계의 디지털 경제를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초단기간에 이룩한 재력(財力)규모다.
이를테면 인터넷 최고의 검색서비스 야후를 설립한 지 5년만에 9억달러를 손에 거머쥔 29세의 제리 양이 그렇고 인터넷을 통한 컴퓨터 판매로 하루 3백만∼4백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의 자산은 1백억달러에 이른다. 그의 나이 올해 33세. 대학졸업 10년만에 14조원을 벌었다. 그저 입이 딱 벌어진다. 비결은 간단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기존의 상식을 뒤집어 엎고 머리와 손끝에서 나온 독창적인 정보기술 아이디어로 신생분야 비즈니스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델컴퓨터를 보자. 부피가 큰 내구소비재는 대리점이나 양판점 판매가 상식. 델은 이런 통념을 과감히 깼다. 전화 팩스 전자문서교환형태의 엑스트라 넷을 통해 고객의 기호에 맞는 컴퓨터를 직판하는 상거래에 착안해 단숨에 세계 4대 메이커로 성장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도 그중의 하나다. 타임이 랭킹 15위에 올린 창업자 제프 베조스(34)는 전자공학도. 한때 월가에서 헤지펀드 매니저로 이름을 날린 그는 인터넷 상거래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청바지 차림으로 강아지 한마리와 함께 서부로 향했다. 그는 시애틀에서 전재산을 털어 집과 창고 하나를 빌리고 아마존이란 이름의 사이버서점을 개업했다.
세계 어느 곳에도 단 한 군데의 매장이 없는 아마존이 지금 ‘보유’하고 있는 책종류는 2백50만종. 전세계 서적 3백만종의 83%다. 지난해 벌어들인 돈은 2억6천만달러, 그의 자산은 10월 현재 약 20억달러 규모.
그 비결은 뭘까. 아마존은 재고물량과 창고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했다. 데이터베이스상에 이름을 넣고 주문자와 출판사를 연결하는 실시간 판매방식으로 단골 고객만 1백60개국에 1백60만명이 되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책방, 그게 아마존이다.
이제 지식은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타임지의 50인 성공스토리는 한마디로 정보와 지식을 모르면 세계 뒷골목의 낙오자 신세가 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경제에선 지식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싸움도 총칼이 아닌 머리로 승부하고 할리우드의 디지털 기술 하나가 우리나라 자동차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의 몇배나 되는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지식격차가 커지면 기업만 망하는 게 아니다. 국가도 2류 3류로 전락한다.
우리가 지금은 IMF개혁에 온정신이 팔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IMF극복 후의 우리 경제의 중추(中樞)를 진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정책우선 순위에서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난 정보화 과제도 그중의 하나다. 과거를 바로잡는 ‘눈앞의 문제’에만 몰두한 나머지 미래분야를 소홀히 하는 대목이 없는지 국가지도자는 확실히 챙겨볼 일이다.
이인길kung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