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생각 ▼
강택중
민경(4)과 민아(17개월)의 ‘딸딸이 아빠’입니다. 두 딸의 생일만은 잊은 적이 없어요. 음력이라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집안일을 종종 잊어버린다는 건 인정합니다. 아내 생일을 깜빡 했다가 회사로 전화한 아내 목소리에서 심상찮은 ‘조짐’을 감지하고 아슬아슬하게 넘어간 적이 있어요. 관리비는 은행에 들르고도 현금카드 비밀번호을 잊어버려서 못낸 겁니다.
하지만 결혼기념일이나 아내 생일을 까맣게 잊고도 태연히 술자리에 앉아있는 동료도 많아요. 아내 회사로만 전화하다 보면 집전화번호를 잊어버릴 수도 있잖습니까. 회사에서 담당하는 마케팅 업무는 정말 신경써야할 잡일이 많아요. 일일이 메모해둬도 자칫하면 빠뜨리는 게 있을 정도죠. 집에서만은 아무런 ‘잡생각’없이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렇다고 소홀한 아빠나 남편은 아니거든요. 어느 아빠보다 아이와 잘 놀아준다고 자부합니다.
건망증 심한 자신이 원망스럽다가도 “콩나물은 왜 빠뜨렸어요”라는 아내의 말에 ‘뭐 대단한 일이라고’하며 속에서 부아가 치밀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처럼 잊지않도록 자주 얘기해주면 될 텐데요. 핀잔만은 빼고요.
▼ 아내생각 ▼
신현덕
대학 2학년 때 ‘복사꽃(복학생 4학년)’ 남편을 만나 5년 연애 끝에 93년 결혼했어요. 연애기간에 남편은 생일을 양력 음력 모두 챙겨줄만큼 세심했죠. 이제 결혼 6년째. 남편이 달라졌어요.
전 결혼 후 살림만 하다가 2년전부터 여행사에 나가고 있어요.한번은 짬을 낼 수 없어서 남편에게 아파트 관리비를 내달라고 고지서와 현금카드를 쥐어줬죠. 결국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연체료를 내야 했어요.
결혼기념일이나 가족의 생일도 제가 말해주지 않으면 가물가물한가 봐요. 드물게 “양파 호박 두부 콩나물 좀 사다달라”고 부탁하면 뭐 하나는 꼭 빼먹어요. 한달 전에는 회사로 전화를 걸어서 “우리집 전화번호가 몇번이지?”라고 묻는 거예요. 심지어 지난해 자기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고 출근하면서도 왜 먹었는지조차 모르더라고요.
‘얼마나 바쁘고 신경쓸 게 많으면 저럴까’하고 이해하려 애를 써요. 하지만 소소한 일을 잊지 않도록 다짐시키다 보면 ‘잔소리꾼 아내’가 된 저를 발견하곤 괜히 서글퍼져요. 혹시 술 담배로 인한 ‘30대 치매’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나요. 말 안해도 집안일 좀 꼼꼼하게 기억해줄 수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