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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75)

입력 | 1998-10-15 18:58:00


제3장 나에게 생긴 일(18)

해질녘에 누군가 현관문을 탕탕 두드렸다. 허리가 꺾어진 듯이 굽은 옹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나를 노려보며 낮에 염소 울음소리를 못 들었느냐고 물었다. 마당에는 애선과 마을 남자 몇이 서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옹녀 할머니는 신을 신고 따라나오라고 명령했다.

할머니와 애선과 마을 남자들을 따라가니 규의 집과 우리 집 사이에 검은 물체 두 개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염소였다. 가까이 가보니 두 마리 염소들은 자신을 묶은 밧줄로 서로의 다리와 배와 목과 주둥이를 친친 묶고는 거품을 물고 네 개의 눈을 하얗게 뒤집은 채 빳빳하게 죽어 있었다.

길 이편 숲과 저 편 숲에 따로 묶어 둔 염소였는데 줄이 조금 길었는지 그만 서로 감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들은 벗어나려고 빙빙 돌다가 더욱 더 친친 묶였을 것이다. 마치 누군가 염소 죽이기 사주라도 받고 교활하게 빈틈없이 얽어맨 듯 보이는 완벽하고 철저한 죽음.

주둥이에 밧줄을 자갈처럼 물고 목에는 겹겹이 밧줄을 감아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입에서 비누같은 거품을 토하며 사력을 다해 한없이 오래오래 당긴 것 같았다. 서로 완전히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러느라 산이 울리도록 나무 뿌리가 흔들리도록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비명소리를 내질렀던 것이다.

―숭측해라. 이렇게 죽을 지경이었으면 울음소리가 차마 듣고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을텐데….

마을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애선은 외출을 나갔다가 지금 막 들어 온 모양이었다. 애선 역시 마을 사람처럼 심문이라도 하는 눈으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규와 교통사고가 난 날 이후로 마을은 또 한차례 부정한 소문에 휩싸여 있는 것 같았다. 애선은 사고가 난 날 후로 처음 마주쳤는데 입을 비죽거리며 노골적으로 심술궂게 굴었다. 나와 규에 대한 소문을 가장 열렬하게 떠들고 다닐 사람도 실은 애선이었다.

―아니 그래, 정말 무슨 소리를 못 들었소?

옹녀 할머니가 마치 내가 염소들을 목 졸라 죽이기라도 한 것처럼 윽박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부정한 소문의 주인공인 나를 노려보았다. 침묵 끝에 나는 대답했다.

―들었어요. 하지만 나와보지는 않았어요.

―모질기도하지.

―정말 소문대로 독한 여자네….

마을 여자가 중얼거리자 마을 남자 하나가 모두 들으라는 듯 커다랗게 소리쳤다. 나는 태연하게 몸을 돌렸다.

―우체국장 남자는 절름발이가 됐다며?

―아니, 바보가 됐다던데.

―아니야. 멀쩡하게 퇴원해서 집에서 쉬고 있다던데.

나는 규의 집 쪽을 한번 돌아보았다. 빈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떠밀리듯 언덕을 내려오는데 내 몸속에서 규가 혼자 불렀던 쓸쓸한 노래소리가 들렸다. ‘그대가 떠난 뒤에 빈집에 혼자갔네 아픈 마음으로 다리를 절며 갔네 그대는 없고 그대 손을 탄 고양이 한 마리 굶주려 맴도네….’

그날 밤에도 호경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해변의 방파제에서 본 푸른 눈의 염소들과 죽은 염소들과 호경과 수의 모습이 뒤섞인 복잡한 꿈을 꾸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감아버렸다. 우리는 노력하면 할수록 서로의 목을 더욱 조르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