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선교사이자 고종황제의 외교 조언자로,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전세계에 폭로하고 1907년 고종에게 네델란드 헤이그 만국평회회담 밀사 파견을 건의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 헤이그 밀사 파견으로 인해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을 당하고 49년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으나 일주일만에 세상을 뜬 헐버트.
헐버트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는 평소 말대로 지금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묻혀 있다. 그는 그러나 우리의 무관심 탓에 아직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그 무관심은 묘비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이하게도 중간에 문장이 끊겨 문맥이 연결되지도 않고 가운데가 비어 있는 묘비명. 어인 까닭인가.
그가 세상을 떴을 때, 당시 이승만대통령이 묘비의 가운데 빈 곳에 추도사를 쓰기로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공란’으로 남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독립장까지 받은 인물에 대해 결례도 보통 결례가 아니다.
이런 와중에 최근 헐버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단체가 생겨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다. 헐버트박사 묘비명 및 기념비 건립준비위원회(위원장 김석용 백범정신선양회장). 정부 차원에서 묘비명의 빈 곳에 추도사를 새겨넣고 동시에 그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우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모임은 또한 고종이 헐버트를 통해 중국 상하이 도이치아시아은행에 맡겼던 25만달러의 독립자금을 일제가 강탈해간 사실에 주목, 이 돈을 되찾는 운동도 펼쳐나갈 계획이다. 헐버트가 남긴 글과 관련 문헌에 따르면 1909년 그가 귀국 길에 상하이의 은행에 들러보니 일제 통감부가 이 돈을 모두 찾아갔다는 것이다. 일제의 불법 강탈이었다.
내년이면 헐버트의 서거 50주년이다. 그의 묘비명 가운데를 휑하니 텅 빈 채로 내버려 둔 50년의 세월, 그동안 우리의 가슴도 그에 못지 않게 황폐해진 것은 아닐까.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