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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최인석-김영현씨 소설 출간

입력 | 1998-10-21 19:39:00


내주 소설집 ‘나를 사랑한 폐인(廢人)’(문학동네)을 펴내는 최인석(45)과 최근 ‘내 마음의 망명정부’(강)를 출간한 김영현(43). ‘불혹(不惑)’을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두 사람의 작품 속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무겁게 걸머지고 가는 사나이들이 그려진다.

그들은 ‘겨울공화국’이었던 유신시절과 함성의 80년대를 거쳐 90년대 끝자락에 엉거주춤 서있는 40대.

그러나 거칠게 흘러온 세월에 승리감을 느끼기보다는 피곤에 지친 모습이다.

희곡작가로 출발, 소설가로는 늦깎이 데뷔(86년)한 최인석. 지금껏 변혁운동과 그 좌절에 대한 직접 발언을 자제해왔지만 이번 작품집의 수록작 ‘약속의 숲’에서는 주인공 대영에게 그 역을 맡겼다.

여당으로부터 국회의원 공천제의를 받은 노동운동가 대영은 11년전 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아내를 찾아 뉴욕으로 향한다. 사생활이 선거운동과정에서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등을 떠밀렸기 때문.

아내와 딸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그는 끝내 그들과 함께 서울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사생아로 태어난 흑인 혼혈손자 철이 때문이다.

스스로를 ‘변절자’라 여기는 자기분열, 자신이 버려둔 동안 세상에 상처입은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는 그에게 딸은 “오래전 아버지가 읽어주었던 동화 ‘헨젤과 그레텔’처럼 우리 모두 캄캄한 숲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라고 일깨워준다.

“자신을 올곧게 세우기 위해서라도 나보다는 세상을 먼저 생각해야 했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탐구가 더불어 진행돼야 합니다. 막막하지만 그 길찾기를 중단할 수 없지요.”

대학시절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옥살이를 하고 80년대를 스크럼속에서 보낸 김영현.

그러나 90년대 그는 세상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내 마음속의 망명정부로 숨는다”고 위축된 모습을 보여왔다.

수록작품 ‘고통’의 화자 명준은 한때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던 0.7평의 감옥안 독방을 이제는 정신적 도피처로 삼는다. 치열했던 과거와 의미없는 현재를 이어줄 연속선을 찾지 못하는 주인공은 황량한 티베트로 여행을 떠나지만 깨달은 것은 ‘거기를 떠나 여기’에서는 “무엇도 버릴 수 없고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발전에 대한 전망도 자기존재에 대한 신뢰도 잃고 오래 방황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극점에 이르렀어요. 지금의 고난이 끝나고 나면 어떤 세상이 와야할 것인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 싶습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