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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사람·문화/홍익대앞]테크노-펑크 「감각파」집결지

입력 | 1998-10-22 19:14:00


‘홍익대앞의 공기는 젊은이를 자유롭게 한다.’ 테크노음악과 펑크문화가 살아 꿈틀거리는 거의 유일한 거리. 서울 동교동 홍익대 앞. ‘대학가 소비문화의 중심지’ ‘오렌지족 출몰지역’의 오명도 한때. 10대부터 30대까지 공존하는 ‘놀이공간’이자 기성문화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산실로 자리잡았다.

▼거리▼

“80년대 중반만 해도 홍익대 정문 건너편은 ‘계단집’ ‘구성집’ 등 소주집이, 큰길가에는 미술학원만 즐비했다.” 홍익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염시경씨(31·회사원)의 회상.

이 거리는 양화대로에서 홍익대 입구까지 비스듬히 올려뻗은 2백m의 차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5백여m씩 펼쳐있다. 미대로 유명한 홍익대의 특성을 보여주는 미술학원 20여개가 곳곳에 있지만 거리의 주인공에서 밀려난지 오래. 3, 4개의 화랑도 대부분 문을 닫아 이제는 몇몇 화방과 거리 구석구석의 벽화만이 미술과의 끊어지지 않은 ‘연(緣)’을 떠올린다.

90년대 초부터 속속 들어선 특색있는 카페와 음식점, 상점들이 골목골목을 차지했다. 한때 강남의 오렌지족과 야타족이 ‘출몰’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남쪽(약도 오른쪽)끝의 일명 ‘피카소거리’는 강남풍의 널찍한 카페와 음식점이 점령. 20대중반∼30대후반 감각파의 집결지로 성장했다.양화대교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북쪽(약도 왼쪽)은 10대의 ‘해방구’로 속칭 먹자골목. 떡볶이가게와 허름한 소주집, 맥주집이 많다. 최근에는 홍대전철역 옆에 전시장 등 각종 문화공간을 갖추고 ‘대규모 전문아트센터’를 지향하는 LG팰리스오피스텔 분양이 시작돼 ‘예술인거리’가 될 전망.

▼사람들▼

낮의 주인공은 대학생. 꽁지머리의 남자대학생, 구멍뚫린 청바지에 후줄근한 스웨터를 걸친 여대생 정도로는 눈길을 끌지 못한다. 오후7∼8시경 북쪽거리에 머리를 염색하고 힙합바지를 입은 청소년이 대거 등장한다. 같은 시간 주차장길과 피카소거리에는 차를 몰고 온 20대 중후반의 댄디들이 속속 도착한다. 9∼10시에는 20여 미술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교복차림의 고등학생들. 홍익대앞의 하루는 15개 가량의 라이브연주클럽에서 언더그라운드 록그룹(일명 인디그룹)의 열정적 음악에 취한 10대후반∼20대초반의 잔치로 끝난다.

테크노음악 전문레코드점 ‘씨티 빗’의 유승열사장. “홍대앞은 다소 괴퍅한 취향의 미대생 거리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나이에 상관없이 디자인 광고 영화 패션 등에 종사하는 감각있는 이들의 거리로 자라났다. 이런 인적구성이 ‘소수문화’가 살아 숨쉴 여지를 만든다”고 설명. 주한 외국인 사이에도 ‘물좋은 곳’으로 소문났다. ‘MI’ 등 몇몇 록카페의 경우 IMF시대 전까지 주말고객의 80∼90%가 외국인이었다. 유학중인 고지마 게이코(30·여)는 “다른 거리와 달리 감각에 맞는 문화와 관용적인 정신이 있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