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던 회사(삼미그룹)가 부도난 뒤 한동안 방에 콕 박혀 지내는 ‘방콕’신세를 면치 못하다 새로운 인생을 시도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다. 평소 한번 해봤으면 했고 바위처럼 굳어져 있는 직업에 대한 귀천사상도 깨볼 겸 해서 선택한 새로운 직업이 롯데호텔 신관 35층에 있는 프랑스식당 ‘쉔브룬’의 견습웨이터다.
세월이 유수같다더니 벌써 취업한 지 7개월째를 맞았다. 남이야 뭐라 하든 나름대로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지구촌에서 가장 훌륭한 웨이터 중의 한 사람이 되고자 열심히 일하고 있고 보람도 느끼고 있다.
누가 식당 웨이터가 하찮은 직업이라 했던가. 식당 종업원이 해야 할 일은 음식만 갖다주고 돈만 받는 직업이 아니다. 식당은 대화의 광장, 사교장이 되어야 한다. 외로운 손님과는 형제처럼 따뜻한 정을 나누고 외지에서 온 손님에겐 민간 외교사절 역할까지 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므로 특히 일급식당 종업원은 외국어 한두가지는 구사해야 하며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교양과 상식을 겸비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서비스를 하려고 노력해도 손님이 서비스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효과는 반의 반에 불과하다는 것도 사실임을 알게 됐다.
식당 종업원을 무조건 천시하고 함부로 내뱉는 말투,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식탁에 앉아 최소한의 상식도 없이 아는 체하는 모습, 가격도 음식내용도 잘 모르면서 무조건 최고로 가져오라는 거품 가득한 주문 등…. 최상의 서비스가 준비된 종업원들조차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예약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방이나 창가의 조용한 자리를 안준다고 호통을 칠 때는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 하더라도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
와인은 가격이 몇만원에서 몇백만원짜리까지 다양하다. 가격을 설명할 틈도 주지 않고 “무조건 최고 와인을 갖고 오라는데 웬 잔소리가 그리 많아”라고 할 때는 손님이 정말 가격을 알고 주문하는 것인지 당황스럽다.
21세기는 바야흐로 정보화 사회이고 컴퓨터 세상이다. 옛날과 달리 세계는 일일 생활권, 말 그대로 ‘작은 지구촌’이다. 좋건 싫건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려면 선의의 경쟁도 하고 좋은 점은 서로 배우고 창피한 일들은 고쳐야 한다. 감출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소한 부분이라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우리 식탁문화나 예절도 하루빨리 고칠 것은 고쳐야 할 것 같다. 술잔을 돌리는 습관은 지양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함께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면 따로 덜어 먹자. 우리의 잘못된 식탁문화가 간염 등 질병을 확산하는 매개체가 아닐까 싶다.
식당에 가기 전에 예약하는 습관을 갖자. 식탁에 앉기 전 화장실에 가서 용변도 미리 보고 자기 외모도 한번쯤은 살피고 손도 깨끗이 씻는 습관이 기본임을 기억해 두자.양식당에점잖게앉아 빵을 잡고 물고기배가르듯칼로 빵을 쪼개고 버터를 넣어 뜯어먹는 모습이 좋아 보일 리 없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좋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태도나 고쳐야 되는 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우리의 식탁문화는 고쳐졌으면 하는 게 웨이터 일을 하면서 자주 떠올리는 바람이다.
서상록(前삼미부회장·롯데호텔웨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