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리의 군중이 저마다 돌을 들고 노기등등한 채 어떤 갸냘픈 여인을 뒤쫓고 있었다. 그녀가 간음한 여인이므로 마땅히 돌로 쳐죽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청년 예수가 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너희 중에 진정 죄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나와서 이 여인을 돌로 쳐보라.” 이 한마디에 기세당당했던 그들이건만 모두 돌을 놓고 고개를 떨군 채 힘없이 물러가 버렸다. 결국 아무도 죄짓지 아니한 자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비록 2천년전 유대땅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오늘 이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 시사하는 바 크다.
오늘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과 부정, 부패와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구조화되고 체계화되어 있어 국가공권력의 사정권을 이미 넘어선 지 오래다. 그래서 어제 돌을 던졌던 자가 오늘은 돌을 맞게 되어 있다. 위로는 권력형 부정에서 시작하여 밑으로는 동네의 어린이 만화방에 이르기까지 뭇 독버섯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 겸허히 내탓 자각할때
IMF관리체제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총체적 부정부패위에 핀 ‘악의 꽃’이다. 이제는 누구도 그 책임을 면할 도리가 없다. 우리는 모두 부지불식간에 공범 또는 방조범이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고 방관만 했다면 그 또한 부작위범임을 면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정죄하며 돌로 쳐죽이려 한다면 언제까지 그러할 것이며 누구까지 그러할 것인가. 그러면 나라는 장차 어찌 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발상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할 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네 탓만이 아니라 내 탓 또한 크다는 자책을 앞세우고 겸허한 심정으로 이 민족의 꿈과 비전을 제시할 지도자는 없는가. ‘제2건국’이 바로 그러한 자책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구상이라면 나는 속죄하는 심정으로 기꺼이 이를 받아들인다.
국가부도와 민족공동체의 붕괴, 이 국가적 위기 앞에서 국가재건과 민족화합의 의지를 새롭게 다짐하는 운동으로서의 제2건국은 매우 시의적절한 발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제2건국이 마치 제1건국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작동하거나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부인한다거나 또는 지난 50년간 전 국민이 피땀흘려 쌓아올린 국가건설의 성과와 경험의 축적을 부정하고 오로지 총체적으로 뒤집어 엎어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오해를 야기시킨다면 모처럼의 선한 의지, 즉 국가재건과 민족화합은 결코 그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살아왔던 모습과 발자취는 그것이 아무리 수치스럽고 혐오스럽더라도 우리의 역사로 기록되고 간직될 수밖에 없다. 원래 역사란 영광과 오욕, 눈물과 웃음이 청실홍실처럼 서로 한데 엮어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버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역사의 말살이란 없다.
그러므로 제2건국은 기존 제도의 폐지와 새로운 제도의 창출을 능사로 삼고 이를 제2건국의 성과로 치부하는데 급급해서는 안된다. 짧은 기간에 눈에 띄게 할 수 있는 새 제도창출보다는 도리어 오랜 기간 눈에 잘 안띄는 새 문화창출, 즉 인간개조운동에 더욱 역점을 두어야 한다. 문화를 제쳐놓고 제도만 일방적으로 손질해 나간다면 자칫 독재를 자초하게 된다. 문화는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있지만 제도는 주로 집권세력의 손아귀에서 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도와 문화가 2인3각 운동처럼 함께 발맞춰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우리의 경우는 제도보다 문화적 후진성에 더욱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교육통한 문화운동을
따라서 나는 새로운 문화운동이야말로 제2건국의 중심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문화는 교육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인즉, 지난주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비전 2002―새로운 학교문화를 통한 제2교육입국’은 매우 적절한 문제파악이요 접근이라 하겠다. 다만 나로서 강조코자 하는 것은 제2건국을 하나의 운동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새문화운동, 곧 새사람 만들기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므로 현대 교육이론과 선진국 추세에 맞추어 세살적부터 가르치게 되어 있는 유아교육 진흥에 각별한 관심과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언제나 법을 존중하고 바르고 곧으며 공중도덕과 공공질서가 몸에 배인 선량한 시민, 민주적이며 합리적인 수준높은 문화시민으로 성장할 때 비로소 이땅에 ‘제2건국운동’이 그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그들은 더이상 간음한 여인을 돌을 들고 뒤쫓던 2000년전의 그같은 군중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윤형섭(전건국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