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독일총선에서 16년간 장기 집권해온 헬무트 콜 총리를 물리친 게르하르트 슈뢰더 신임 총리가 녹색당과의 ‘적록(赤綠)연정’을 27일 출범시킨다.
슈뢰더 정부의 출범은 독일 정치사에서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슈뢰더총리는 전후(戰後)세대에 속한다는 점. 요컨대 독일 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룩한 것이다. 또한 전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한 것이다. 환경론자 이상주의자들의 집단처럼 인식돼 온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했으며 정부 출범과 더불어 수도를 베를린으로 완전히 이전, 독일 통일의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통일 8년만에 21세기의 문턱에 서서 슈뢰더를 선택한 독일은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안으로는 통일후 아직까지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동서독 주민간의 정신적 갈등과 심리적 장벽이 버티고 있다. 콜전총리가 추진하지 못한 각종 개혁도 조기에 단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밖으로는 통일후 유럽의 최대 강국으로 부상한 독일이 그에 적합한 국제적 위상을 정립하고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슈뢰더 총리에게 맡겨진 이들 과제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통일이 되자 동독 주민들은 곧 서독처럼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오히려 실업자는 늘고 자기들은 ‘2등시민’으로 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동서독을 갈라 놓은 장벽이 무너져 물리적인 통일은 실현됐지만 정서적 심리적 융합은 미진해 ‘미완성의 통일’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말한다.
이를 해소하려면 동독에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로 산업을 발전시켜 18%에 이르는 실업률을 줄이고 동독의 소득수준을 서독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콜전총리는 통일을 이룩해 냈다. 유럽통합을 앞장서서 크게 진척시킨 훌륭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특히 통일후 높은 실업률 및 세제 연금 사회복지 등에 대한 개혁에서 만족할 성과를 얻지 못해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러한 개혁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독일사회 내부의 심각한 집단적 이해관계가 장애물이다.
통일전 서독은 영국 프랑스보다 앞선 경제 강국이었으나 분단에 따른 정치적 핸디캡 때문에 ‘경제 강국, 정치 난쟁이’로 일컬어졌다. 통일이 된지 9년만에 과거의 수도이자 역사적 도시인 베를린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독일인들의 심리와 독일의 위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 명실공히 서구와 중동구의 중앙에 위치하여 유럽의 중심적 역할을 할 근거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독일은 바야흐로 국제사회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좌표를 정립해야만 한다.
슈뢰더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개혁 정책에 대해 보수파 언론들은 벌써부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슈뢰더 정부가 만족스런 정책 효과를 한꺼번에 이뤄낼 것으로 믿는 독일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슈뢰더총리가 총선에서 나타난 독일 국민의 변화에 대한 갈망을 발판으로 독일의 21세기를 어떻게 그려나갈지 주목된다.
이기주(주독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