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둘씩이나 앞서 보내고 죽는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다 박복한 제 운명이지요.”
26일로 10·26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해사건이 난지 19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정권도 수차 바뀌고 세상도 많이 달라졌지만 이 사건의 주역 김재규(金載圭)전중앙정보부장의 유족들은 여전히 말을 삼간다. ‘망신패가(亡身敗家)’의 가족들은 역사의 그늘에 숨어 지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3가 61 김전부장의 옛집에는 모친 권유금(權有金·95)씨가 지금도 60평짜리 단층한옥을 계속 지키며 살고 있다.
2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재춘(金在春)씨가 살던 집을 김전부장이 사들여 한때 ‘명터’라는 소문도 났던 곳. 이면 도로에 최초로 아스팔트가 깔렸다고 할 정도로 세도를 엿보게 하던 이 집도 지난 여름 홍수로 대들보가 내려앉을 정도로 퇴락했다.
해마다 10월이면 몸살을 앓는다는 권씨는 외우다시피 읽어오던 묘법연화경도 손에서 놓을 정도로 기력이 쇠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건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김재규가 효자였다는 것뿐….”
권씨는 79년말 수감된 김재규를 처음 만났을때 ‘네가 예전같으면 나랏님을 죽인 셈인데 어찌 살아남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며 아들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고 유족들은 전한다.
권씨는 지난해 6월 둘째아들 항규(恒圭)씨가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다 폐렴으로 갑자기 세상을 뜰 때도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항규씨는 10·26사건이후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운영하던 건설업체를 포함해 전재산을 몰수당한뒤 사찰을 떠돌며 살다 저 세상 사람이 됐다.
10·26당시 육군대위였던 셋째동생 영규(英圭·48·육사29기)씨는 이달초 뒤늦게 대령으로 진급했다. 영규씨 역시 “형님의 일을 평가하는 것은 가족의 손을 떠난 일”이라면서 말을 ‘아끼는’ 태도다.
김전부장의 부인 김영희(金英姬·69)씨는 10·26이후 계속 살았던 보문동 집을 팔고 96년 논현동으로 이사 가서 여전히 두문불출. 10·26이후 미국에서 결혼해 사는 외동딸 수영(壽英·45)씨는 89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자주 한국을 찾고 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