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처음 20여분 동안의 생생한 전투 장면 묘사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 상당수가 반전(反戰)의식을 가지게 됐다고 할 정도.
특히 이 영화는 촬영 못지않게 음향효과도 뛰어나서 실제로 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미국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졸도한 사람까지 있었다.이 충격적인 영화를 보다보면 전쟁과 과학기술의 연관성에 대해 몇 가지 착잡한 생각이 떠오른다.
도대체 전쟁은 언제부터 그처럼 잔혹한 대량살상극으로 변한 것일까?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신무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때. 자동연발소총 기관총 잠수함 증기추진장갑함 등이 이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철도를 통한 대규모 군대 이동과 전신에 의한 지령 전달도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남북전쟁의 전사자는 60만명이 훨씬 넘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영화가 전쟁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하는 점도 문제. 사실 이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달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배경이 깔려있다.
남북전쟁 당시엔 사진기가 발명된지 얼마되지 않아 노출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현장의 숨가쁜 상황을 필름에 담기는 곤란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뒤의 참혹한 전사자들 모습이 사진으로 알려지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데 적잖게 기여했다. 그전까지 전쟁의 이미지는 주로 영웅적이고 낭만스런 것이었다.
그 뒤 사진술의 발달로 현장 촬영은 가능해졌으나 1,2차 대전과 한국전쟁 등에서는 정부나 군당국의 통제로 취재가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월남전에서는 TV가 새롭게 대중매체로 등장,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광범위한 반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큰 곤욕을 치른 미국 정부는 그 이후 철저한 보도통제 정책을 고수, 83년의 그라나다 침공이나 89년 파나마 침공, 걸프전쟁 등에서는 전쟁의 참상이 사실상 알려지지 않았다. 그대신 공중폭격처럼 직접적인 피해장면이 드러나지 않는 전투만 마치 전자오락처럼 중계방송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전쟁 이미지의 조작으로 활용된 것이다.
박상준(SF평론가)cosmo@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