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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이래서야]못말리는 추태행진…국민들은 울고싶다

입력 | 1998-10-28 19:13:00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국정감사장이 의원들의 낯뜨거운 추태의 경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여야의원들이 ‘정책감사를 하겠다’는 공언(公言)을 뒤로 한채 근거도 없는 마구잡이식 폭로성 질의에다 욕설공방과 ‘음주국감’은 물론 난투극까지 벌이는 등 온갖 추태가 난무하고 있다.

▼ 무책임한 폭로 ▼

재정경제위 소속 국민회의 정한용(鄭漢溶)의원은 28일 한국은행 국감에서 신상발언을 통해 이틀전 국세청 국감때 제기했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1천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일주일전 입수한 정보지에 그런 내용이 있어 이에 대한 조사여부를 물었는데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엄청난 폭로처럼 비쳐졌다”면서 엉뚱하게 언론에 화살을 돌린 뒤 “주변에 많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그러나 “정보지 내용을 확인도 없이 국감에서 질의해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확인할 틈이 없었지만 의혹이 있으면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니냐. 사실 여부는 조사를 해봐야 안다”고 덧붙였다.

▼ 난투극 ▼

정무위의 27일 국가보훈처에 대한 국감장에서는 뒷골목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때아닌 난투극이 벌어졌다. 난투극의 주역은 한나라당 이사철(李思哲), 국민회의 국창근의원.

이날 사건은 이의원이 김의재(金義在)보훈처장에게 “광복회가 대통령 인척을 회장으로 추대하려는 듯한 인상이 짙다”고 질의하자 국의원이 김중위(金重緯)위원장에게 “같은당 의원이라고 봐주느냐. 회의 진행을 똑바로 하라”고 항의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이의원이 “국회의원 자격도 없으면서 무슨 소리야”라고 고함치자 국의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싸움이 붙었다. 두 사람은 서로 멱살과 넥타이를 잡고 “어린 놈의 ××가 여기가 아직도 검찰인 줄 알아” “이 ××야, 나이를 들먹이려면 나이값 좀 해” 등 ‘육두문자’를 주고받으며 10여분간 뒤엉켜 싸웠다.

두 의원은 28일 성업공사에 대한 국감에서도 티격태격했다.

국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전날 사건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국감이 정치공세장이 안됐으면 좋겠다”고 이의원의 발언을 비꼬았다. 이에 이의원은 “동료의원의 발언도중 이를 무책임한 발언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몰상식한 자세”라고 되받아쳤다.

두사람 사이에 설전이 계속될 조짐을 보이자 김중위위원장은 “언어는 인격의 표현이므로 자제하고 골라서 쓰자”고 막았다.

▼ 욕설과 폭언 ▼

교육위의 26일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국감에서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의원이 자료제출 미비를 이유로 국감진행을 막자 국민회의 노무현(盧武鉉)의원이 이에 항의하면서 욕설이 오갔다.

두 의원은 주위의 만류에도 한동안 “눈에 보이는 게 없느냐” “거지 같은 놈” “×만한 새끼, 너 죽어” 등의 막말을 주고받았다.

같은날 재경위의 국세청에 대한 국감에서도 여야의원들간 욕설이 오갔다.

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의원이 “이석희(李碩熙)전국세청차장이 개인적으로 돈을 거둬들인 것을 ‘세도(稅盜)’로 규정한다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으로부터 받은 20억원과는 뭐가 다르냐”고 발언하자 국민회의의원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안의원의 질의를 제지하고 나섰고 이 과정에서 여야의원들간 육두문자가 섞인 욕설이 오갔다.

특히 국민회의 한영애(韓英愛)의원은 안의원에게 “양아치같은 질의를 하고 있다. 김현철(金賢哲)에게 돈받아 당선된 주제에 엉뚱한 발언만 한다”고 폭언을 퍼부었다.

▼ 음주 등 추태 ▼

국방위의 23일 국방부 국감에서 일부 여야의원들이 술을 마시고 국감장에 들어와 졸거나 잡담을 했을 뿐만 아니라 술에 취한 목소리로 시비성 질의를 해 빈축을 샀다.

같은날 농림해양수산위의 농림부 국감에서 한나라당 윤한도(尹漢道)의원은 국감장에 TV카메라기자들이 없다는 이유로 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에게 카메라기자들을 불러오라고 호통을 치는 추태를 보였다.

▼ 민원과 로비 ▼

일부 의원들은 국감을 지역구 민원해결용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눈총을 받았다.

건설교통위의 27일 철도청 국감에서 국민회의 이용삼(李龍三), 자민련 오장섭(吳長燮)의원 등은 지역구와 관련된 철도개발사업을 집중적으로 물어 주위의 빈축을 샀다.

▼ 국감파행 ▼

여야의원들은 ‘총풍(銃風)’ ‘세풍(稅風)’사건 등 핵심쟁점들에 대해서는 진실규명보다는 당리당략을 앞세운 정치공세를 우선, 국감의 파행을 자주초래했다.

법사위의 27일 서울지검 국감에서 여야의원들은 ‘총풍’사건을 놓고 정치공방만을 거듭하다 급기야 자정을 넘기자 회의 계속여부를 놓고 서로 삿대질을 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의원들이 집단퇴장하는 바람에 국감이 사실상 파장, ‘질문만 있고 답변은 없는 국감’이 돼버렸다.

27일 재경위의 지방국세청에 대한 국감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였다.

여야는 ‘세풍’사건과 관련한 증인 출석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이느라 감사를 수차례 공전시키고 하루종일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문철·송인수기자〉full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