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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사람·문화/홍익대앞]주류를 거부한 「자유지대」

입력 | 1998-10-29 19:25:00


《‘하루종일 방에 누워 시름시름 앓았네∼/허구헌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네∼/거울을 보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네∼/나는 가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네∼’ 지난 주말 서울 서교동 홍익대 부근 지하라이브클럽 ‘스팽글’은 10대후반∼20대중반 70여명의 열기로 후끈. 록밴드 ‘코코아’가 펑크음악 ‘러브 송’ 공연을 시작하자 이들은 무대앞으로 밀려나왔다. 펑크음악의 폭발적인 음률과 반항적 메시지에 심취한 이들은 ‘헤드 뱅잉’(머리를 앞뒤로 심하게 흔드는 동작)과 발울림으로 연주에 반응했다. 홍익대앞 거리의 용어로 ‘클럽’인 라이브 공연장 분위기다.》

▼ 클럽 문화 ▼

‘코코아’의 리더 이우성씨(27)는 “90년대초까지 서울 낙원상가 부근에 모이던 ‘음악한다’는 젊은이들이 지금은 전부 홍대앞 사람이 됐다. 이제 이 거리에는 미대생의 트레이드마크인 화구통보다 기타를 맨 사람이 더 많다”고 말한다.

95년4월 ‘드럭’의 오픈을 시작으로 홍익대앞은 언더그라운드 록밴드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현재 10여개인 이곳 ‘클럽’을 근거지로 서울의 50∼1백개 록밴드가 끊임없이 이합집산한다. 구성원은 20대 초중반과 고교생.

손님도 대학생과 고교생이 80∼90%. 이동희군(18·C고2년)은 “주말마다 5천원에 음료수 한병을 받아들고 공연을 본다. 터질듯한 음악을 듣다보면 입시의 부담감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고. 클럽의 주인도 대부분 20대. 록 마니아라는 ‘롤링스톤스’의 김천성씨(25).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대한 애정 때문에 운영이 어려워도 클럽을 지켜가고 있다.”

이 거리 음악의 주류는 펑크와 모던록. 20% 정도 차지하는 비주류는 힙합과 테크노. 우리사회에서 주류의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는 파괴적 메시지가 홍익대앞에서는 먹힌다. 독립음반제작사인 ‘인디’의 김종휘실장. “대학가로서의 특성과 앞서가는 문화를 접하고자 하는 예술인이 모이는 거리라는 점이 ‘언더그라운드문화’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배경”이라고 설명.

▼ 스탠딩 컬처 ▼

‘선채로 마시고, 서서 떠들고, 서서 춤춘다.’ 서양식 파티문화에서 유래된 ‘스탠딩 컬처’. 국내 거리로서는 드물게 ‘서서놀기문화’가 자리잡은 곳. 테이블을 아예 없앤 클럽 ‘드럭’의 대표 이석문씨. “강남역 부근이나 압구정동의 록카페에도 이런 ‘컨셉’이 있지만 이곳처럼 거리전체에 정착되진 못했다.”

▼ 음식 ▼

‘김밥으로 허기를 때우고 맥주로 갈증을 달래며 문화로 배를 채운다.’ 이거리를 자주 찾는 이주영씨(30·H대학원 박사과정). “배를 채우기 위해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간단히 요기하고 맥주 1,2병과 음악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예찬. 이곳 음식문화의 대표는 김밥집. 골목마다 김밥과 떡볶이를 파는 테이블 3,4개짜리 김밥집이 있다. 24시간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이 많은 것도 특징. 라이브클럽이나 록카페에서는 안주를 아예 팔지 않거나 새우깡 한봉지만 달랑 던져준다. 맥주 2,3병 이상만 마셔도 ‘주당’.

▼ 패션 ▼

찢어진 청바지, 늘어진 스웨터, 제멋대로 매달린 장신구, 남학생의 졸라맨 머리. ‘키치패션’은 홍익대 미대생들로부터 시작된 이 거리의 대표적 옷입기방식. 골목골목에 숨어있는 액세서리가게와 옷가게가 공급원. 이곳에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303일 동안의 신혼여행’의 저자 선현경씨(29)는 “압구정동이나 이대 앞에도 ‘키치패션’은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고급품을 낡은 것처럼 만들거나 외제품을 쓰는데 비해 이곳 키치문화는 진정한 ‘중고품·중저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주장.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