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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이너 리그(10)

입력 | 1998-10-30 19:09:00


교유 ③

어쨌거나 두환이 말하는 ‘집안’이란 주민등록상의 집안이 아니었다. 바로 18동인 문제였다. 열일곱 명은 모았는데 한 명을 구하지 못한 채로 대결날짜가 다가오고 있다는 거였다. 말을 마친 뒤 두환은 조국을 힐끗 보았다. 나와 승주의 눈동자 역시 나란히 조국 쪽으로 향했다. 조국이 덩치가 좀 작긴 하지만 머리통은 있으니 머릿수 채우는 일이야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여론에 밀린 조국은 똥 마려운 표정을 짓더니, 그 대신 뒷줄에 세워야 한다, 라는 조건을 달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조국은 대결장소로 나가지 못했다.

그는 소희 대신 소희의 친구인 주근깨 많은 봉단이와 가까이 지내는 중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예쁜 여학생 옆에는 꼭 못생긴 친구가 하나 붙어다닌다. 예쁜 쪽은 상냥한데 못생긴 쪽이 언제나 더 거만하고 까다롭게 마련이다. 봉단도 그런 축이었다. 나는 봉단에게 친절한 조국의 속셈이 무엇인지 의심을 품곤 했다. 어딘지 내가 하는 편지 대필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조국과 봉단, 소희와 승주는 이따금 함께 어울렸다. 그날도 넷이서 교외에 있는 솔숲 너머 저수지에 놀러갔었는데 하필 시외버스 바퀴가 펑크가 나서 시간에 늦어버렸던 것이다. 우리 중에 그런 공교로운 우연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조국의 설명은 그러했다. 그가 18동인 집결지에 닿았을 때는 이미 죽은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고 지나간 싸움의 격렬함을 증명하듯 싸늘한 바람 한 줄기만 먼지에 싸여 떠 있더라는 것이다.

조국은 소희와 승주, 봉단이 있는 분식센터로 되돌아왔다.

“없어?”

“응.”

“만두나 먹어.”

“그러지 뭐. 다꾸앙하고.”

조국은 봉단 옆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는 이내 그들이 저수지의 경사진 길에서 손을 잡았을 때의 기분으로 되돌아갔다. 한 시간쯤 노닥거렸을까. 옆자리의 우락부락한 남학생 세 명이 시비를 붙여왔을 때에야 그들은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을 알았다. 짝을 맞춰 앉아서는 자기네 안방처럼 떠들어댔으니 아니꼽지 않을 리 없었다.

“만두 좀 조용히 먹자, 앙?”

“계집애 끼고 놀려면 왜 만두집 오나, 술집에 갈 일이지.”

긴장하는 여학생들에게 조국은, 저런 양아치들 신경 쓸 거 없어, 라고 작게 말했다. 불행히도 그 말은 그쪽 자리의 유난히 귀가 큰 남학생에게 들리고 말았다.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쪽에서 유리잔을 바닥에 집어던진 것이다. 선전포고였다. 시간이 늦어 그들 말고 손님은 한 테이블에밖에 없었는데 그들이 일어나 황급히 빠져나가자 분식센터 안은 팽팽하게 당겨진 정적이 감돌았다. 승주와 조국은 더 이상 아래턱이 떨리지 않도록 어금니를 꼭 무는 것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경황중에 승주가 옆눈으로 흘낏 보니 소희는 말리려는 마음은커녕 단단히 팔장을 낀 채 어서 혼내주라는 듯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