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
영국경찰이 칠레의 전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체포한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한 영국 고등법원의 판결은 큰 실수다.
이번 판결로 피노체트가 석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영국에서만 적용되는 것으로 피노체트를 비롯한 국제범죄자들이 모든 나라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법원은 “영국법은 국가원수가 재임 중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면제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고문 납치 살인은 공적인 기능이 결코 아니다.
판결의 가장 큰 문제는 재판부가 국제법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대 국제법의 근간이 되는 뉘른베르크 원칙은 “국제범죄를 저지른 국가원수는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국제범죄는 살인이나 고문과 같은 극악한 범죄를 뜻한다. 영국은 고문과 학살에 반대하는 국제조약에 조인했다. 조약은 학살과 고문을 저지른 사람이 한 국가의 원수이건 어디에서 범죄를 저질렀건 관계없이 기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영국과 칠레간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런 판결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노체트 체포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대다수의 칠레국민은 그가 기소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정부가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존중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직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그의 추종자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피노체트와 같은 흉악한 범죄자에 대한 면책특권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서는 안된다.
〈정리〓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