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8월 중순 서울 종로구 중학동 미진빌딩에 있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의 개인사무실.
팩시밀리의 벨이 울리더니 4장의 문서가 들어왔다.
발신인은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의 차남인 그룹부회장 원근(源根)씨였다. 문서에는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사업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팩스가 발송되기 며칠 전 정부회장은 자신의 참모를 불렀다.
“이걸 좀 요약해줘. 네 댓 장으로.”
“예.”
“이거 중요한 거야. 이걸 받는 사람이 여러 부처를 설득하기 위한 자료로 쓸 것이니 정교하게 만들어야 해.”
정부회장이 건네준 서류는 한보그룹 내부에서 만들어진 시베리아 가스전 사업 타당성 검토보고서와 한보의 가스전 인수 계약서 등이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문건이 하나 포함돼 있었다.
영국의 교포과학자 A씨가 이석채(李錫采)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에게 보낸 편지 사본이었다.
자원개발분야를 전공, 시베리아 가스전이 얼마나 유망한 사업인지 잘 아는 A씨는 한보가 우여곡절 끝에 가스전 지분을 인수하는 데 성공하고도 통상산업부의 방해 때문에 사업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청와대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몰라도 정부회장에게 들어가 있었던 것.
정부회장의 참모들은 이들 문서를 바탕으로 4쪽 짜리 요약본을 만들었다. 요약본을 찬찬히 검토한 정부회장은 팩스번호를 하나 적어주었다.
“수고했소. 이 번호로 팩스를 넣고 문건은 파기하세요. 원본은 물론 컴퓨터 안에 있는 것도 모두 지워야 해.”
정부회장은 현철씨의 고려대 후배로 현철씨가 주도한 재벌 2세들의 모임인 경영연구회 핵심멤버였다.
정부회장이 현철씨에게 팩스로 문서를 보내고 보름이 지난 8월31일 재정경제원은 통상산업부와 합동회의를 열어 한보의 시베리아 가스전 지분인수를 추인했다.
한보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보수사 초기에 대검찰청에 불려갔더니 팩시밀리로 보낸 문제의 사본을 내놓고 ‘누가 만들었느냐’고 추궁하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검찰은 한보 및 현철씨 사건 수사발표 때 이 대목을 공개하지 않았다.
한보비리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진행중이던 97년 5월 초 검찰 수사 관계자는 동아일보 법조출입기자와 만났다.
“수사 초기에 한번은 정태수총회장이 92년 대선 직전 김영삼후보측에 거액의 대선자금을 건넸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 거액이 야권이 주장해온 6백억원 대선자금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그보다는 좀 많다”고 답변했다.
다시 “1천억원이 넘느냐”는 질문에 수사 관계자는 “아니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응답했다.
97년 2월 초 홍인길(洪仁吉)의원은 한보사건과 관련해 수사망이 좁혀 들자 “나는 훅 불면 날아가는 ‘터레기’(터럭의 경상도 사투리)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한보사건의 몸통은 누구인가’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계기가 됐다. 수사 관계자와 한보측 인사들의 증언은 ‘몸통’이 현철씨와 그 이상의 선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실체를 분명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한보는 수많은 정관계 실력자와 인연을 맺고 도움을 받았다.
한보와의 인연으로 구속된 문민정부 실세 정치인은 홍인길 황병태(黃秉泰) 정재철(鄭在哲)의원과 김우석(金佑錫)내무장관 정도였다.
그러나 한보그룹 관계자들은 “정작 한보와 질긴 인연을 맺어온 정치인들은 살아 남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이 관계자는 당시 신한국당의 C, P, S, H의원을 꼽았다.
“이분들은 워낙 자주 찾아오는 바람에 ‘출입의원’이란 별명으로 불렸어요. 이들이 방문할 때는 미리 가방을 준비해두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 그러면 접견실을 비워두고 007가방에 돈을 채워 준비해둡니다. 가방에 1만원짜리 현찰을 가득 채우면 5천만원이 됩니다. 가방은 항상 은마상가 1층의 잡화점에서 똑같은 것으로 사왔죠. 가게 아주머니는 우리 때문에 007가방을 꽤 많이 팔았어요.”
특히 고위공무원 출신인 C씨는 국회에 진출하기 전부터 한보그룹을 드나들며 한보의 대북 프로젝트에 도움을 많이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의 뒤를 돌봐준 공직자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역시 홍인길씨였다.
95년 6월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꺼리자 정태수씨가 청와대 신관 1층의 홍인길총무수석 비서실로 찾아왔다.
홍수석은 즉석에서 한이헌(韓利憲)경제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수석, 산업은행에 얘기 좀 해주세요. 아니, 허허벌판에 말뚝 꽂을 때는 잘해주다가 공장이 다 지어졌는데 돈을 안준단 말입니까.”
그 후 한수석은 김시형(金時衡)산업은행 총재에게 전화로 “홍수석의 부탁입니다. 한보에 대한 대출문제를 한번 고려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두달 뒤 4백억원이 한보에 대출됐다.
정총회장과 홍수석의 관계는 정총회장의 아들 보근씨에게 ‘상속’됐다.
95년 12월 초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비자금사건으로 정총회장이 구속되자 보근씨가 홍수석을 찾았다.
“수감중인 아버지가 중풍 때문에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연세도 높고 당뇨도 심해 복역하기 힘드십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구속돼 있어 회사 사정이 몹시 힘듭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습니다.”
“그래요.”
홍수석은 즉시 이철수(李喆洙)제일은행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보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행장은 돈장사하는 사람이니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얼마 후 제일은행에서 2천억원이 한보에 대출됐다.
홍수석은 다시 보근씨에게 말했다.
“그 문제는 한이헌 경제수석을 한번 만나보세요. 내가 지금 전화를 할테니.”
보근씨가 홍수석의 사무실 2층에 있는 한수석의 방을 찾아갔지만 한수석의 표정에는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색해진 보근씨는 대충 인사만 하고 방을 나와버렸다.
96년 11월 정총회장이 우찬목조흥은행장을 찾아가 ‘청와대와 얘기가 다 돼있다’고 위세를 부리며 1천억원의 대출을 요구했다.
일단 요구를 거절한 우행장은 이석채경제수석실을 방문했다. 정총회장의 ‘청와대 지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한보에 시설자금을 좀 더 주는 문제를 검토중입니다.”
“그래요. 연말에 부도가 나면 바람직하지 않지요.”
이수석의 한마디 때문인지 12월초 1천억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이미 정총회장은 홍수석에게, 홍수석은 이수석에게 지원을 부탁해 놓은 뒤였다.
97년 1월8일 오전에는 제일 산업 조흥 외환 등 4개 시중은행이 한보에 대한 1천2백억원의 구제금융 지원을 결정했다. 신광식(申光湜)제일은행장은 회의가 끝난 뒤 이수석을 찾아가 회의결과를 보고했다. 홍수석이 힘을 써 이뤄진 마지막 대출이었다.
정총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홍의원에게 부탁해서 은행장들을 통해 대출이 이뤄졌다. 홍의원을 하늘같이 여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은행들은 한보를 부도처리할 때도 혼자 결정하지 못했다.
97년 1월22일 한보그룹에 부도를 내겠다는 뜻을 통보한 것은 신제일은행장이 아니었다. 임창열(林昌烈) 당시 재정경제원차관이었다.
22일 낮 4개 은행장이 한보처리에 관한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마침 임차관이 전화를 걸었다. 신행장이 말했다.
“한보 어음이 1천8백억원 돌아왔습니다. 한보철강의 주식을 양도하면 일단 막아줄 생각입니다. 거절하면 부도처리하고 법정관리하겠습니다.”
“반드시 정태수씨가 경영권을 포기하도록 하세요. 아직 정씨에게 통보 안했다면 제가 하지요.”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임차관이 정총회장을 불렀다.
“은행장들이 은행관리를 결정했습니다. 내일까지 주식을 내놓고 경영권 포기각서를 제출하십시오.”
“24시간만 여유를 주십시오.”
“최후통첩입니다.”
“뭐요? 임차관, 윗사람에게 전하세요. 신중히 결정하라고.”
정총회장은 나중에 청문회에서 ‘윗사람’이란 강경식(姜慶植)재경원장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이수석을 지칭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은행과 기업의 상거래여야 할 대출에 엉뚱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끼여든 것이다.
97년 5월30일 김영삼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보사건의 조사결과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를 우리 모두에게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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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씨 형기 얼마나 되나]
정태수(鄭泰守)한보그룹 총회장은 한보사건과 관련, 특가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해 12월 말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정씨가 확정판결 후에도 교도소 대신 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전현직 국회의원과 단체장 등 8명에게 3억여원의 뇌물을 준 혐의가 추가돼 이 재판이 서울고법에 계류중이기 때문. 정씨는 이 사건으로 4월 서울지법에서 1년6월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이 원심까지 확정되면 정씨는 16년6월의 형을 살아야 한다.
정씨는 1천6백31억원의 한보철강 운영자금을 임의로 빼돌려 세금납부 주식매입 전환사채 인수 등으로 횡령한 것에 대해 법원이 9월 회사측에 돌려주라고 결정, 민사상으로도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