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세계에는 기상천외한 얘기가 많다.
미국 정보기관의 첩보요원들은 비둘기의 귀소(歸巢)본능을 이용해 정보수집활동을 했다. 워싱턴주재 러시아대사관에 사는 비둘기들을 잡아다 가슴에는 음성수신장치를, 날개에는 초정밀 송신기와 안테나를 이식해 날려보냈다. 러시아대사관으로 되돌아간 비둘기들은 창가에 앉아 대사는 물론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생생하게 미국측에 전해 주었다.
미국은 또 부러진 나뭇가지 모양의 도청장치를 만들어 중국대사관 벤치 밑에 떨어뜨려 놓았다. 대사가 자주 주요인사들과 정원을 산책한다는데 착안한 것. 집무실에서는 하기 힘든 사적대화 내용까지 엿들은 미국측이 중국대사를 어떻게 재량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혹시 참으로 은밀한 약점을 잡아 협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러시아대사든 중국대사든 비둘기나 나뭇가지가 스파이였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캐나다의 공동 정보수집활동에 참여했던 전직 캐나다 첩보원이 책을 써 폭로한 내용이다. 책은 94년에 나왔으니 지금은 또 어떤 깜짝 놀랄 장비를 만들어 쓰는지, 그렇게 수집한 정보가 어떻게 악용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 놀랄 일은 이런 식의 도청이 당사국간의 극한분쟁으로 이어지는 일도 드물다는 것이다. 따져봤자 하급 첩보원이 정부 승인없이 멋대로 활동했다고 우기면 그뿐이고 당한 쪽만 바보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국가간 첩보전쟁은 그렇다 치자. 민간에 대한 정부기관의 감시는 어떤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에게도 도청 불법감청은 더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는 재야인사 노동단체 운동권학생 등의 집과 사무실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돼 논란이 일었다. 이런 문제들의 제기는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와 구 평민당이 주도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정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들이 집권한 지 불과 8개월만에 도청 불법감청 시비에 휘말려 5개 관련부처 명의로 ‘안심하고 통화하세요’란 신문광고를 낼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문제는 이제부터 정말로 안심하고 통화할 수 있느냐 하는데 있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정보관리는 도청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다. “전화로는 얘기를 못하겠다”며 만나자더니 만나서도 중요한 사항은 말로 않고 종이에 쓴 뒤 “알겠지”라고 되묻는 게 고작이었다. “도청이 심한가”하고 물었더니 “아래(부하를 지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러니 서울의 교통체증이 도청을 피해 직접 만나 얘기하려는 사람들 때문에일어난다는우스갯소리가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높은 사람들이 불법감청은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 봤자 곧이 들을 국민은 많지 않다. 위의 얘기와 아래의 행동은 다를 것이라는 말도 한다. 그만큼 불신이 깊어졌다. 사회 전반의 불신은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 불신의 불씨는 지금 서둘러 꺼야 한다. 수사 담당자들에 대한 철저한 재교육과 불법행위를 찾아내 일벌백계하는 모습을 보여야 안심하고 통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을 것이다.
민병욱min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