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때로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조선왕조 영정(英正)연간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스물여덟의 푸르른 나이에 노론 벽파와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뒤주에 갇혀 8일만에 죽어간 사도세자에게는 열한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그 소년은 훗날 조선왕조 문치(文治)의 꽃을 피운 정조가 된다.
대왕 정조는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의 한을 서른세해만에 갚는다. 칼과 피로써가 아닌,장엄한 문화의 불꽃에 의한 8일간의 해원(解寃)으로. 아버지는 8일간의 흑암 속에서 죽어갔지만 아들은 8일간의 화려한 화성행(華城行)과 그것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로 아버지의 혼백을 위로한 것이다. 아울러 죄인 아닌 죄인으로 숨죽여 울었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한많은 세월 또한 달래주었다.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은 정조의 그 뜨거운 숨결을 담아낸 책이다.
‘을묘원행’에는 그러나 애틋한 효심을 넘어서는 다른 뜻이 숨어 있다. 오히려 그것은 아버지를 그토록 비통한 죽음으로 몰아간 어둠 속의 음험한 잔존 세력을 향한 시위였다. 군왕의 절대적 힘과 왕조 중흥의 자신감을 만방에 과시한 문화적 친위 쿠데타였다.
그 왼편 날개를 이룬 신하는 뜻밖에 화인(畵人) 김홍도였다. 스스로가 화가였던 정조는 “그림에 관한한 홍도가 알아서 하라”고 했을만치 그에게 절대적 신임을 보냈다. 그 김홍도가 지휘하여 화성행의 모습을 그려낸 ‘반차도(班次圖)’는 장엄한 민족기록화이다. 총1천7백79명의 수행원과 7백79필의 말이 동원된 이 화려한 원행의 하이라이트는 다섯째날의 진찬례(進饌禮), 즉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이다. 십장생 병풍이 둘러쳐진 속에 여민락이 연주되고 모든 참가자들은 “천세(千歲) 천세 천천세”를 외친다. 문화의 힘이요, 자신감의 절정이었다. 환궁하던 길, 한 백성이 “먹고 입는 모든 것이 임금의 은혜”라고 말하자 “그런 의례적 말이 아닌 그대들의 질고(疾苦)를 말하라. 무엇이 두려워 말 못하는가”라고 다그치는 장면도 나온다. 이 책에는 이같이 등짝에 죽비처럼 후련한 한장면 한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김병종(화가·서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