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화가를 영화화하는 좋은 방법은 삶에만 초점을 맞추고 작품 자체는 무시하는 것이다. 화가의 천재성보다 알콜중독 광기 불운 사랑 등 삶의 에피소드를 그려내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감독들이 빈센트 반 고흐나 툴루즈 로트렉 모딜리아니 렘브란트를 선호하는 반면, 덜 극적인 삶을 지닌 모네 몬드리안 마그리트를 기피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제작자들이 예술 자체보다 예술가의 삶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술관이나 개인 소장가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걸작을 빌려주기를 꺼린다는 점이다. 게다가 저작권법에 의해 20세기 화가들의 작품 복제나 모작 자체가 금지돼 있다.
프랑스에서 화가겸 조각가로 널리 알려진 샤를르 마통감독(66)은 최근 17세기 네덜란드의 천재화가 렘브란트의 일생을 그린 영화를 촬영하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의 아이디어는 화가를 고용해 렘브란트의 대표적 초상화 8점을 복제하되 주요 배역을 맡은 영화배우와 닮도록 초상화의 얼굴을 바꾼다는 것.
따라서 영화 속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진짜 렘브란트보다는 주인공 역을 맡은 독일 배우 클라우스 마리아 브렌다우어(‘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메릴 스트립의 첫남편 역할을 한 배우)를 닮았다. 렘브란트의 아내인 사스키아의 초상화도 물론 실제 아내가 아니라 아내 역을 맡은 요한나 테르스테지가 모델이다. 렘브란트의 하녀겸 정부였던 헨드리케 스토펠, 해부학수업을 주관했던 니콜라예 털프교수등 주변 인물의 초상화도 모두 출연배우의 얼굴을 바탕으로 재창조됐다.
그러나 마통감독은 원작 초상화에 밴 예술성을 잃을까 우려, 재창조된 초상화들이 렘브란트풍을 간직하되 실제 초상화 속 인물과 배우의 중간 정도로 그려지도록 주문했다.
화가출신 답게 마통감독은 캔버스 앞에서 브렌다우어의 연기가 너무 과장됐다고 수시로 지적하기도 했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