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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구성애/성교육「연꽃」피우는 심정으로

입력 | 1998-11-12 19:15:00


내 강의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가 있다. 직설적인 표현이라고도 하고 노골적인 얘기라고도 하며 육담(肉談)이라고도 한다. 특히 나이많고 보수적인 어른들은 아주 못마땅해 하는 것 같다.

지난 서너달간 TV 성(性)교육 프로그램 ‘아우성(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을 위하여)’을 진행하면서 이런 반응들에 대해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신경은 많이 쓰였다. 그러나 어느날 역시 흔들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한 사건이 있었다.

얼마전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7개월간 고정적으로 출연해 오던 부산방송의 청소년 프로그램이 끝을 맺었다. 그래서 소위 ‘쫑파티’를 하게 되었는데 밤 12시경이 되어 끝이 났다. 노래방에서 우르르 몰려 나와서도 차마 헤어지지 못하고 길에 서서 쑥덕거리고 있는데 인근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몰려왔다.

아저씨 아줌마를 비롯해 아가씨도 있었는데 이들보다 더욱 열렬히 반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아니라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들이었는데 그들 특유의 옷차림과 치장으로 티가 났다. 그들은 정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도 지르면서 나에게 몰려와 손을 잡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아줌마, 아주 잘하고 있어요. 시원해요. 저희들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좀 있다가 저희들도 이런 생활을 청산할 거예요. 고마워요.” 나야말로 눈물이 날 지경으로 고마웠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게 했을까.

‘음란물’에 대한 방송을 하고 난 지 며칠 후였다. 우연히 어떤 젊은 아저씨를 만났다. 꼭 할말이 있으니 차 한잔을 같이 하자고 했다. 절박한 것 같아 자리를 함께했는데 그 아저씨는 의외의 고백을 했다. 그분은 어려서부터 환경이 불우해 혼자 지내는 적이 많아 외로움을 달래느라 음란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결혼해서 두살짜리 아이도 있는데 부인과의 성생활이 원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음란물 중독에 빠져서인지 정상적인 성관계보다는 총각 때처럼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1년이 넘도록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음란물 강의를 듣고 문제의 원인을 알았고 자신이 바로 음란물 중독자임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젠 그같은 생활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하고 집에 있던 음란 비디오 테이프를 모두 버렸단다. 그는 지금까지 참아준 부인에게 고맙고 미안하며 앞으로 새롭게 노력해 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스승 장명국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 현실을 통찰하는 지혜와 사람에 대한 애정, 변화에 대한 믿음, 그리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대안이다. 내 나름대로 그 가르침을 따라 배우려 애써 왔는데 이제야 조금 터득한 것 같다. 유흥업소에서 속칭 ‘삐끼’를 한다는 그 청년들과 음란물 중독자인 그 아저씨의 고백은 붕붕떠서 정신을 못차리는 나에게 스승의 존재를 일깨워 주었다.

어두운 성의 한복판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나로서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에겐 진흙과 같이 어둡게 엉겨붙은 얘기들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그런 성교육을 하고 싶다.

구성애(내일신문 성교육센터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