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11월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일요일에 맞춰 비밀리에 한국을 들른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 일행이 한국인 이름으로 객실에 들었다.
이들은 강경식(姜慶植)재정경제원장관 겸부총리 이경식(李經植)한국은행총재와 함께 룸서비스로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친 뒤 한국의 외환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캉드쉬〓“얼마나 필요합니까?”
이총재가 손가락을 세 개 펴보였다.
캉드쉬〓“30억달러요?”
이총재〓“3백억달러가 필요합니다.”
캉드쉬총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경제규모라면 그 정도 돈은 있어야겠지요.”
강부총리 등의 굳은 표정이 풀리려던 순간이었다.
캉드쉬〓“조건이 있습니다.”
강부총리〓“뭡니까?”
캉드쉬〓“대통령 당선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총재〓“선거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캉드쉬〓“그러면 후보들이 동의하면 될 것 아닙니까.”
강부총리 등은 난감해 했다.
캉드쉬로서는 현 정권의 약속만으로는 부족하고 다음에 정권을 잡을 지도자가 IMF의 요구사항을 철저히 따르겠다는 확약을 받아두겠다는 계산이었다.
이틀 후인 11월18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임창열(林昌烈·현 경기도지사)통상산업부장관 자택. 임장관은 24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 참석차 19일 출국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때 전화 벨이 울렸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었다.
“임장관이 밴쿠버 APEC회의에 꼭 가야 합니까?”
“꼭 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럼 가지 말아요.”
김대통령으로부터 이미 11월12일 “강부총리 경제팀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당신이 개각 때 중요한 일을 맡아야 할 것 같다”는 언질을 받은 임장관은 출장을 포기했다.
다음날인 11월19일 오전 8시 김대통령 집무실.
강부총리가 김인호(金仁浩)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과 함께 대통령에게 ‘금융시장 안정대책’과 ‘캉드쉬IMF총재 면담결과’를 보고했다.
“금융 대책은 방금 보고드린 바와 같습니다. 오늘 발표하겠습니다. 또 IMF에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러나 IMF행은 보안문제도 있고 해서 문건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기자회견 도중 질의응답과정에서 구두로 발표하겠습니다.”
“수고했소.”
보고를 끝낸 이들이 대통령 집무실 옆 대기실로 나와 양자의 역할분담 문제를 논의하던 시간에 김대통령이 김용태(金瑢泰)비서실장을 불렀다.
“아니, 저 사람들이 사표 얘기를 안하네….”
“아 예, 받아오겠습니다.”
강부총리 경제팀에 대해 불신이 깊던 김대통령은 외환위기 대책이 마련되는 즉시 경질하기로 오래전부터 결심하고 있던 터였다.
김비서실장이 대기실로 와 말했다.
“사표를 내라시는데….”
강부총리와 김수석은 잠깐 어리둥절했다.
곧 표정을 수습한 강부총리는 윗도리에 품고 다니던 사표를 꺼냈다.
김수석은 “저는 이미 제출해둔 게 있으니 그것으로 처리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물었다.
“후임은 누구랍니까?”
“모르겠어. 대통령의 (비밀주의) 인사스타일을 알잖아.”
강부총리가 한숨 지었다.
“큰일났네. 오늘 오전 9시에 루빈(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에게 전화하기로 했는데….”
두 사람은 다시 대통령께 간단한 하직인사만 하고 바로 집으로 갔다.
사무실의 짐은 부하 직원들이 챙겼다.
강부총리는 자택에서 루빈장관에게 전화했다.
“제가 방금 부총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논의한 대로 IMF행은 발표될 겁니다. 후임자와 잘 협조해주십시오.”
이날 오전 11시 임창열통상산업부장관이 신임부총리로 임명됐다. 경제수석에는 김영섭(金永燮)씨가 임명됐다.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가능한 한 빨리 발표하세요. IMF로 가는 문제도 잘 챙겨보시고.”
김대통령의 당부에 임부총리는 “IMF지원요청을 다른 정책과 함께 검토하겠습니다”고 답변했다.
임명장 수여 직후 김용태비서실장은 신임 임부총리와 이날 예정됐던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를 다음날인 20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19일 정오. 임부총리는 통산부장관실에서 김우석(金宇錫)재경원국제금융증권심의관과 김석동(金錫東)외화자금과장으로부터 두 가지 자료를 받았다. ‘금융시장 안정 종합대책’과 ‘캉드쉬IMF총재 면담결과’였다.
물론 문면에는 ‘19일 IMF행을 발표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이날 오후3시 김용태비서실장이 임부총리에게 전화했다.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오늘 발표합시다.내일은 안기부가 중요한 발표를 한답니다.”
중요한 발표란 고영복(高永復)서울대명예교수 간첩사건이었다.
이날 오후5시에 임부총리는 금융대책을 발표했다.
기자들이 ‘IMF에 지원을 요청할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 문제도 필요하다면 검토하겠습니다. 현재로서는 우방국들이 지원해주기만 하면 IMF의 도움 없어도 해결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IMF행’이 발표될 것으로 생각했던 윤증현(尹增鉉)재경원금융정책실장은 놀라서 윤진식(尹鎭植)청와대경제비서관에게 전화를 했다.
“왜 부총리가 IMF행을 발표하지 않지요?”
“글쎄 말입니다.”
“성층권에서 새로운 협의가 있었나….”
기자회견이 있던 시점은 IMF본부가 있는 미국 워싱턴에서는 오전이었다. IMF측은 깜짝 놀랐다.
“아니, 16일에 IMF행을 약속했잖아. 한국 정부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존재로군.”
임부총리는 왜 IMF행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업무 인수인계가 안됐기 때문에.’
강부총리는 부총리경질 통보를 받고는 바로 집으로 가버렸다.
김대통령도 임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IMF행을 잘 챙겨보라’고 지시했을 뿐 당일 발표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임부총리는 “IMF행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이날 발표해야 한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몰랐다”고 말했다.
최근 강전부총리는 인수인계를 하지 않은데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물러난 사람이 신임부총리에게 어쩌구저쩌구 얘기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로 생각했다.”
임부총리는 다음날인 20일 한국에 와 있던 티모시 가이스너 미 재무부차관보를 만나 달러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의 입장은 확고했다.
“미국 입장은 누차 밝혔는데요. 한국이 IMF로 가면 돈을 빌려주겠지만 그냥은 못 드립니다.”
임부총리는 즉시 청와대로 보고했다.
“IMF로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IMF가 대선후보들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일 저녁 대선후보들을 청와대로 초청해주십시오. 제가 직접 설명드리겠습니다.”
21일 청와대 회동에서 임부총리의 설명을 들은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후보는 역정을 냈다.
“나라 살림을 어떻게 했기에 이 지경이 된 겁니까.”
임부총리는 IMF지원요청계획을 이날밤 10시50분 발표했다.
결국 11월19일 발표계획이 무산된 것은 △전시(戰時)나 다름없는 상황에 경질됐다고 후임자를 만나보지도 않고 집으로 가버린 강부총리 △중대발표를 몇시간 앞두고 경제부총리를 돌연 경질한 대통령 △선거철의 단골메뉴인 간첩단 사건 발표를 위해 국운이 걸린 기자회견의 일정을 좌지우지한 안기부 등의 기묘한 합작품이었다.
외환위기 수습과 관련, 문제가 불거진 것은 ‘엉성한 인수인계’뿐만이 아니었다.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임부총리는 97년 11월28일 ‘돈을 꾸겠다’며 일본에 갔다.
아직 IMF와 차관공여 서명도 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임부총리가 재무부 국장이던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낸 K씨의 증언.
“임부총리가 돌연 일본에 간다기에 너무도 의아했습니다. 엄중한 시국에 부총리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요. 특히 엄낙용(嚴洛鎔)재경원차관보가 11월11일 일본에 갔다가 퇴짜맞은 상황이어서 부총리의 방일은 하나마나였습니다. 그래서 임부총리가 돌아온 후 ‘왜 갔느냐’고 물어봤습니다.”
당시 임부총리는 K씨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한나라당에서 닦달을 했습니다. 박태준(朴泰俊)자민련대표가 일본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일본에 간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서 ‘김을 빼기 위해서는 부총리가 먼저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임부총리는 예상대로 아무 성과없이 귀국해야 했다.
〈허승호·이용재기자〉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