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가면 으레 만나게 되는 초상화. 언뜻 따분하고 밋밋해 보이는 그림이다. 그러나 그 초상화를 하나 둘 뜯어보면 선 하나, 표정 하나에 주인공의 삶의 족적이 그대로 담겨 있어 무척이나 흥미롭다.
우리 미술사에서 초상화의 걸작은 대체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얼굴을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초상화에 매달렸던 것일까.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고래로 초상화를 그리는데 있어 ‘터럭 한올이라도 실물과 닮지 않으면 곧 타인’이라는 견해가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인물 모습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려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섬세한 수염 하나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네 초상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실물을 정확히 묘사하면서도 인물의 정신과 성품까지 담아내야만 했다. 옛사람들은 이를 ‘정신을 옮긴다’는 뜻에서 ‘전신(傳神)’이라 불렀다. 즉 ‘사형(寫形·형태를 그리는 것)’을 넘어 ‘사심(寫心·마음을 그리는 것)’까지도 성취해야 한다는 엄격한 미술장르였다.
그러다보니 조선 선비 초상화는 그야말로 조선 선비정신의 구현이라 할만하다. 소박하고 조촐하면서도 맑고 깨끗한, 그리고 결코 과장됨이 없는 그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원복 미술부장은 “초상화야말로 조선 성리학의 미감(美感) 그 자체”라고 힘주어 말한다.
먼저 편안한 그림부터 감상해보자. 조선시대 명재상이었던 이항복(1556∼1618)의 초상. 아무 사심없는, 후덕하고 평온한 얼굴이다.
성리학자 송시열(1607∼1689)의 초상화(국보239호)엔 거유(巨儒)다운 고집스러움이 생생하다. 17세기 당쟁의 한복판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굽히지 않았던, 당대 최고 성리학자로서의 지독한 자존심이 뚝뚝 묻어난다.
선비화가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국보240호)은 한국 초상화의 백미. 대담하면서도 정교한 묘사, 강렬한 내면의 구현 등 형상 묘사와 정신세계의 표출이 가히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불타오르는듯한 수염, 정면을 노려보는 매서운 눈이 섬뜩할 정도다.
문신이었던 이채(1745∼1820)의 초상은 조선 선비의 맑고 올곧은 정신세계 그 자체다. 주변의 모함으로 벼슬에서 물러나는 등 적잖은 시련을 겪었으면서도 그의 얼굴엔 티 한점 없이 청정함만 가득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매천 황현(1855∼1910)의 초상. 안경 속의 사시(斜視)를 통해 세상을 질타하는 비분강개, 그리고 반골적 성향이 기가 막히게 표현되어 있다. 나라가 망하자 아편을 삼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의 처절한 몸부림. 그림 속 매천의 사시는 조선시대 끄트머리 그 비운의 역사를 응시하는, 뜨거운 비분강개의 표현이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그저 단순한 얼굴 그림이 아니다. 미술사학자였던 고 최순우선생의 말. “인간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아름다움이 어디 있겠는가. 의롭고 투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일지니….”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