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총리가 16일 콸라룸푸르에서 만났다.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이은 두번째 만남으로 이들의 대좌는 벌써부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 관계자들의 관심거리였다. 아시아 경제위기의 진단과 처방에 대한 두 정상의 시각차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두 사람은 이에 대한 직접적인 논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 열린 APEC 최고경영자회의 연설을 통해 두 정상은 간접논쟁을 했다. 개막연설을 한 마하티르총리가 먼저 “세계화로 취해진 모든 조치가 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며 “세계화를 거부해서는 안되나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이 적응하는 준비기간을 용인해야 할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다양한 21개 회원국간에 공정한 발전이 있는 것은 아니며 조건이 같다 하더라도 공정경쟁이 꼭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국제시장에 무법상태가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가 다시 공격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김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아시아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자유로운 시장질서를 목표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어로 연설한 김대통령은 “각국 스스로 시장경제원리에 부합되지 않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개혁하고 대외개방을 확대하는 것만이 국가간의 협력을 보다 긴밀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역내 경제발전 성과를 극대화시켜 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경제강국들은 신흥시장국가들에 대한 금융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금융산업의 낙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경영기법의 전수에 인색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김대통령은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도전적인 외국투자가들에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며 아태지역의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 및 기업간 유대강화 노력을 당부했다.
두 정상의 이같은 처방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김대통령은 아시아의 위기상황을 부정부패 등 아시아적 관행에서 초래된 ‘경제전반의 위기’로 본 반면 마하티르총리는 선진국 단기투기성 자금의 농간에 의한 금융시장 왜곡으로 빚어진 ‘외환위기’로 한정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APEC 최고경영자회의는 말레이시아가 민간기업의 APEC 참여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1천년을 위한 새로운 APEC’라는 주제로 역내 저명 기업인과 정부지도자 1천명을 초청해 마련한 것이다.
〈콸라룸푸르〓임채청기자〉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