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수습과정에서 가장 ‘분주했던 사람’으로 재정경제부 정덕구(鄭德龜)차관이 꼽힌다.
그는 환란 와중에 재정경제원 기획관리실장과 국제금융분야를 담당하는 제2차관보를 지냈다. 그러나 그는 미묘한 시기에 미묘한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97년 9월17일 국내 언론들은 정실장의 말을 인용해 ‘세계굴지의 금융회사인 영국의 SBC워버그가 한국에 10억∼15억달러를 꿔주기로 했다’고 비중있게 보도했다.
정실장은 보도가 나오기 직전에 드 기어 SBC워버그 회장을 만나러 영국으로 가버렸다.
그는 “한국이 괜찮은 투자처라는 내용의 발표를 해달라”며 기어회장을 기자회견장까지 불러냈다. 그러나 기어회장은 끝내 “대출해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정실장은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에디 조지총재도 기자회견장에 불러낼 계획이었다. 조지총재는 정실장의 속셈을 미리 알아차리고 기자회견에 나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97년 12월 IMF 구제금융이 확정된 뒤에도 외환사정은 몹시 나빠졌다.
그러나 당시 정차관보는 “아직 괜찮다”면서 “일본이 1백억달러 브리지론을 주겠다고 하기에 필요가 없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브리지론이란 IMF차관을 담보로 외국에서 임시로 빌려오는 긴급자금.
‘일본이 브리지론을 제의했다’는 것은 큰 뉴스다. 그러나 확인결과 당시 정부는 일본에서 브리지론에 관한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정차관은 최근 “SBC워버그건은 기아문제가 장기화되면서 당초 합의가 깨진 것이고 브리지론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