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끄는 청와대가 회심의 정치기획으로 내놓은 ‘제2의 건국’ 운동이 초장부터 난관에 봉착해가는 인상이다.
어차피 운동의 주류에서 소외된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가 실질적인 추동력(追動力)의 핵심으로 상정한 각종 시민단체들의 반응도 거의 비판적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불법단체 시비를 제기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사실 이 운동은 태생 단계(지난 8·15 대통령 경축사)때부터 과연 전도가 순탄하겠느냐는 앞말뒷말이 무성하게 뒤따랐다.
청와대측이 운동의 실행주체로 이른바 ‘범민간단체 네트워크’구성안을 내놓았을 때는 물론, 더 나아가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가 대중조직의 주도세력이 된다는 얘기가 나오자 정치권 시민단체 등 여기저기서 운동의 기획자들을 향해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거냐”는 비난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지금의 나라형편상 일견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는 ‘제2의 건국’이라는 화두가 무엇 때문에 이처럼 제 위상을 찾지 못하고 심지어 여기저기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된 것일까.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제2의 건국’이라도 해야할 상황”이라는 심정적 당위론적 담론적 현실인식으로서의 ‘제2의 건국’과 정치적 실천명제로서의 ‘제2의 건국’ 사이에 엄존하는 괴리를 제대로, 그리고 정밀하게 교량한 프로그램 없이 일을 벌였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에 대한 운동기획자들의 이해부족이나 오판도 이에 연유한 문제중 하나다.
“대통령자문기구인 제2건국위원회는 전국조직을 할 수 없는데도 지방자치단체에까지 조례를 만들라는 지침을 시달하고 근거없이 국가공무원이 참여해 예산이 집행되는 불법단체”라는 한나라당의 지적이 정치공세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측의 군색한 반박(지금 각 시도가 조례를 만들어 추진중인 조직은 대통령자문기구와는 상관없는 제2건국위의 자문실천조직)을 보면 이 운동이 얼마큼 졸속으로 진행되는지가 어렵지 않게 헤아려진다.
정치적 실천명제로서 ‘제2의 건국’이라는 구호는, 굳이 얘기하자면 정변기의 위정자들이 권력기반을 새롭게 창출하기 위해 구사할 법한 상징조작적 수사(修辭)다. 현 집권세력이 50년만에, 헌정사상 최초로 이뤄낸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그같은 ‘기획정치’가 불가피하고 또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힘을 얻을 수 있는 정변상황과는 근본적으로 그 바탕이 다르다.
지금 집권세력이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할 실천명제는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정치권부터 펀더멘털을 강화하고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정치권이 불신, 더 나아가 퇴출대상으로 거론되고 갖가지 갈등요인이 여전히 증폭되는 상황에서 제아무리 훌륭한 개혁의 추진방향과 의제가 설정된들 공리공론(空理空論)에 그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기왕에 닻을 올린 일이니 잘되기를 바라지만 그동안의 행태와 접근방식으로는 아무래도 그런 기대를 걸기가 힘들다. 지금 급한 일은 경향 각지의 명망가들을 대규모로 엮어내는 ‘외형꾸미기’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과 일의 선후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손질하는 ‘내실다지기’다.
이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