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동성동, 중앙네거리와 반월당네거리 사이 56만여㎡의 동성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한 성인들의 유흥가였다. 그러나 20대 여성 10명의 ‘작은 혁명’ 이후 새로 태어났다. 지금은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가면서 10대∼40대초반의 분위기로 점차 바뀌는 ‘세대 스펙트럼’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야시와 로데오 ▼
동성로의 핵 ‘야시거리’. ‘젊고 매력적인 여자들이 깜찍한 옷을 판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야시거리는 20대초반의 공간. ‘첨단유행’의 10만원대 정장, 2만원대의 티셔츠를 판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카페와 레스토랑이 널찍하게 분포하고 있다.
바로 옆 ‘로데오거리’는 10대 ‘교복족’의 무대. 이들은 오락실의 ‘잃어버린 세계’ 기계 앞에서 공룡과 맞서거나 스티커사진을 찍으면서 저녁 한 때를 즐긴다. 고교 때부터 여기서 ‘살았다’는 백헌정씨(23·여·대구 북구 칠성동). “로데오, 야시거리에는 고등학생과 대학 저학년이 1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즐길만한 눈요기거리가 많다. 그러나 대학 3학년만 돼도 자연히 발걸음이 ‘대백(대구백화점)’이 있는 북서쪽으로 향하고 테이블에 전화기가 있는, 3천원짜리 커피를 파는 카페를 찾게 된다.”
대백 정문앞은 다양한 세대가 뒤엉겨있지만 부근은 본질적으로 20대 중후반의 놀이와 쇼핑 공간. 유명패션대리점과 카페, 레스토랑이 몰려있다. 북서진하면 30대 이후의 공간이 나타난다. 좀 더 고급브랜드의 옷가게들이 눈이 띄고 ‘방석을 깔고 앉아 즐기는 음식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길(동신로)만 건너면 중년 이후의 공간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 쿠데타 ▼
음식점과 대포집이 눈에 띄는 정도의 변두리 주택가였던 동성로. 69년12월 대백이 문을 열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의류와 신발의 유명브랜드 대리점이 들어섰다. 고급 술집과 대형 음식점들이 큰 거리를, 싼 주점과 밥집이 골목을 점령. 큰 거리는 30대 이상의 직장인이, 뒷골목은 계명대 경북대 등 대학생들이 차지했었다.
그러나 10년전 20대 여성 10명이 이 거리를 바꿔놓았다. 이들은 각각 5∼10평 규모의 작은 옷가게를 내고 20대 초반 여성 취향의 제품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이 전략이 성공하자 10대도 덩달아 좆아들어오면서 옆골목에 ‘로데오거리’가 생겼다.
▼ 문화 ▼
야시거리와 로데오거리를 진원지로 ‘±20문화’가 퍼지고 있는 동성로. 하루 유동인구는 대구 전체인구의 약 12%인 30만명. 다양한 연령대가 일단 만났다 ‘세대별 공간’을 찾아 떠나기 때문에 만남의 장소가 된 대백 정문앞은 과거 집회 시위의 중심지였으나 요즘은 캠페인과 판촉활동의 중심지. 최근 ‘점자(點字)의 날’ 캠페인을 이곳에서 벌인 대구점자도서관의 엄부영씨(26·여)는 “몇 발자국 안 떼고 신뢰성 높은 여론조사를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
동성로의 세대스펙트럼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IMF한파로 ‘±20문화’가 점차 ‘±30대 문화’를 밀어내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제 손으로 돈을 버는 30대의 발걸음은 줄고 있으나 용돈을 타쓰며 모여놀기 좋아하는 교복족과 ‘20대 부유층’은 계속 몰리고 있어 이들 두 계층을 중심으로 거리가 양극화 하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구〓정용균·나성엽기자〉jyk061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