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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한수산 새소설집 「말 탄 자는 지나가다」

입력 | 1998-11-20 18:59:00


작가 한수산씨(52)의 새 소설집 ‘말 탄 자는 지나가다’(민음사)의 수록작들은 ‘용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코 용서하기 힘든 것들에 대한.

신문 연재소설에 쓴 표현 몇가지에 ‘군을 조롱했다’는 혐의를 씌워 작가와 그 친구들까지 불문곡직 붙잡아 가두고 고문했던 80년의 신군부. 그들에게 “종말을 모르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라고 펜으로 외친 것이 ‘말탄 자…’지만 작품은 초고가 완성된지 16년만에야 빛을 보았다. 작가의 영혼을 짓밟았던 신군부도 ‘과거의 권력’이 된 지금, 작가는 비로소 책을 펴내며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또 다른 단편 ‘맑고 때때로 흐림’에서 그가 ‘용서’의 상대로 생각하는 것은 일본이다.

81년 필화사건의 후유증으로 방황하던 작가가 궁여지책으로 택한 일본행. 코흘리개 때부터 뼛속깊이 ‘반일’이라는 구호를 새긴 작가에게 일본은 결코 가고싶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보낸 몇년은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좋은 일본사람들을 많이 만난 영향일 겁니다. ‘맑고 때때로 흐림’에 등장하는 우에하라 노인도 실제로 식민지시절 조선총독부에서 예술작품을 검열했다고 고백한, 한 일본노인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선배의 부탁으로 일본의 한 촌로가 보관하고 있는 이중섭과 김환기의 그림을 찾아나선 나. 그러나 노인은 이미 한국에서 그림을 사냥하러온 다른 화상에게 작품을 넘겨준 뒤다. 오히려 그가 아들뻘의 한국인인 나에게 “꼭 가지고 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조선인의 유골이다.

“한국인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과거를 행복하게 추억하는 노인. 그런 노인에게 저항감을 느끼면서도 유골은 관심없이 그림이나 챙겨가기에 바빴던 한국인들의 행태에 자괴감을 느끼는 나. 작가는 그 혼돈속에 무엇을 용서하고 무엇을 잊지 말아야할 것인가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가능한지를 묻는다.

“한일 모두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식민지시대를 내 눈으로만 보고 이해할 때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죠.”

진정한 용서의 길을 찾기 위해 작가는 피폭자와 2차대전 전범문제, 한일양국의 젊은 세대들의 만남을 다룬 3편의 장편을 차례로 집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